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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것은 매우 우발적이고도 계획적인 사건이었다. 예정되어 있었던 일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 것 뿐이야, 라고 전화를 끊은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 날도 밤늦게 헬스장에서 돌아와 방청소를 하며 그녀와 통화를 했다. 통화는 내내 유쾌했다. 소소했고, 일상적이었다. 그러다가 나는 어느새 방바닥에 누워 핸즈프리 마이크를 입술 바로 앞까지 끌어 올리고 있었다. 그럼 우리 그냥 오빠-동생하는 게 어떨까. 깔깔거리며 웃던 일련의 대화 후에 헤어짐의 말들이 자연스럽게 오고 갔다. 생경하고 부조리한 말들이었다. '오빠-동생 관계로의 전환'이라는 합의의 구체적인 내용조차 전형적인 이별의 모습과는 달랐다. 울면서 싸운 적이 한 번 없는 우리의 헤어짐은 그저 고요하고 담담했을 뿐이다. 말은 안했지만 이별조차 저 혼자 집어삼켜 삭히겠다는 그녀의 익숙한 희생 정신, 혹은 마조히즘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당신 정말 끝까지 이럴꺼야? 너무 착해서 자꾸 속상한 그녀에게 나는 이렇게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합의 이후 우리의 대화 또한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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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클레어 | 2007/09/26 19:13 | 삶-비망록 | 트랙백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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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복수는 너의 것

   고교 2학년 때의 동대문구장이 떠오른다. 그 날은 대통령배 전국 고교 야구 대회의 결승 진출 티켓을 놓고 인천고와 광주일고가 맞붙는 날이었다. 학교 풍물부였던 나는 응원부 친구들과 함께 경기장 뒤쪽 스탠드에 자리잡았다. 그리고 이내 훌리건들의 카니발이 시작되었다. 남고생들의 테스토스테론이 함께 폭발시키는 에너지는, 북채로 소가죽을 빵빵 두들기는 것이나 플라스틱 나팔을 불어대는 것만으로 해소될 성질이 아니었다. 훌리건들에게는 제물이 필요했다. 그 날 우리의 먹잇감은 광주일고 좌익수, 잊을 수 없는 그 이름 4번 타자 김홍일이었다. '홍일아 똥꼬가 바지먹는다' '야 니 여자친구 죽이더라' 따위의 저질 도발들이 필드 안쪽으로 쉴새없이 떨어졌다. 어디선가 '저 새끼 텔레토비 닮았다!'는 말이 들리자 누구랄 것도 없이 와하하 웃다가, 일제히 텔레토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보라돌이~뚜비~나나~뽀오" 그 굵은 목소리들이 합창하는 꼴에 정신 사나웠는지, 김홍일은 단순한 플라이볼을 놓치는 어이없는 실책을 범하고 말았다. 우리들은 배꼽잡고 웃으며 김홍일을 손가락질 했고, 그는 스탠드쪽을 한 번 보더니 고개 숙이고 벤치로 뛰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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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클레어 | 2007/09/06 10:05 | 삶-비망록 | 트랙백(1) | 덧글(19)

스웨덴 교육의 변화와 자립형 사립고

    스웨덴 보수당 집권 이후의 교육

   대학원 BK21 사업단이 스웨덴의 국가 교육청 국장을 초빙해 강연을 연다기에 한 번 가보았다. 주제는 스웨덴 보수당 집권 이후 교육 시스템의 변화에 관한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지난 연말 전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집권한 스웨덴 우파의 총선 승리를 기억할 것이다. 국내 보수언론들이 '노무현 정부의 비전 2030안이 토대로 하고 있는 스웨덴 복지 사회 모델을 스웨덴 자신이 부정했다!'며 호들갑을 떨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긴 프랑스 우파의 대선 승리 이후에 이명박 후보가 사르코지 '동지' 운운했던 것에 비하면 차라리 점잖은 편이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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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클레어 | 2007/08/28 18:04 | 교육-에세이 | 트랙백 | 덧글(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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