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브루스 올마이티>에서 전지전능해진 주인공 브루스 놀란이 딱 한 가지 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것이었다. 여자친구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브루스는 온갖 초대형 이벤트를 꾸미지만 그녀는 쉽게 마음을 풀지 않았다. 아주 오래 전 그 영화를 보던 당시에는 그것이 스토리 전개를 위한 억지 설정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그 설정은 제법 철학적이었던 듯 하다. 인간의 자유의지와 자연인과성에 관한 칸트의 제 3 이율배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필연성이 지배하는 영역과 인간의 자유가 존재하는 영역은 차원이 다른 두 영역이다. 별을 따다 주고 달을 따다 줄 수 있다고 해도 사람 마음은 그와는 별개의 세계에 존재한다.
오늘 밤 백색등 밑에 차를 세우고,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그 아이와 나는 나란히 앉아 있었다. 나는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내가 당장 올마이티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 아이의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내 마음도 어쩔 수 없는 것이어서 지금 이 쓸쓸함은 내 이성과 자유의 영역에서 스스로 해결해야만 할 것 같다.
- 2010/09/04 00:38
- 日記 / 雜談
- beauclerc.egloos.com/2647063
- 3 comments
- 2010/09/03 23:47
- 日記 / 雜談
- beauclerc.egloos.com/2647040
- 2 comments
- 조강지처
이 블로그는 나의 조강지처다. '술지게미와 쌀겨로 끼니를 이을 만큼 구차할 때 함께 고생하던 아내'다. 내가 블로그를 그만 둔 이유가 있었던 만큼 내가 망설임 끝에 이 곳에 돌아온 이유도 있었다. 좀 더 쿨해질 필요가 있다. 어차피 세상은 진흙탕이고 인간사는 배신으로 가득하다.
- 임상치료
이글루스에는 이웃공개, 일촌공개 따위의 기능이 없는 것 같다.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는 일기 카테고리에 비공개로 쓰기로 결정했다. 내 글쓰기 욕구가 우선이다. 나는 지금 자신으로부터 임상치료를 받고 있으며 이를 멈추어선 안된다. 무리하지 말고 좀 더 긴 호흡으로, 긴 주기로 글을 올린다.
- 교육학 학술 블로그
'교육학'에다가 무려 '학술'이라니. 혼자 놀기 딱 좋은 모토다. 지금부터 이 블로그는 우주로 가는 스푸트닉 2호. 나는 최초의 우주 개 라이카가 된다. 이글루스에서 진행되는 논쟁 이슈들과는 최대한 거리를 둔다.
- Stay with me
<붕가붕가레코드의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의 모토를 인용한다. "붕가붕가란 개나 고양이들이 봉제인형이나 사람 다리 따위에 비비적대며 스스로를 달래는 행위. 내 표현 욕구가 우선이지만 들어주는 너도 신경쓰겠으며, 그렇게 네가 들어주어야 내 표현 욕구도 해소할 수 있다." 내게 필요한 것은 마스터베이션보다는 붕가붕가다. 지금 글을 읽고 있을 누군가에게 붕가붕가하겠다.
- 2010/08/12 00:04
- 備忘記
- beauclerc.egloos.com/2636378
- 20 comments
#1.
나는 옛날의 일기장을 들춘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기를 계속 써야 할 이유를 발견한다.
- 버지니아 울프
3년 만에 만난 친구가 나에게 잘 지냈느냐고 묻는다. 그 순간 나는 그 긴긴 시간을 요약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직면한다. 어떻게 요약할까? 별로 안 친한 사이였으면 '잘 지냈냐'는 애매한 질문에는 '잘 지냈지'라는 애매한 대답으로 얼버무리는 것이 대략 적절하다. 그리고는 서로의 외모의 변화에 대한 간단한 코멘트로 옮겨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만약 그 친구가 내가 좀 싫어했던 사람이라면 최대한 재수없게 요약하는 것이 좋다. 재수없는 것의 으뜸은 잘난 체다. 잘난 체는 대놓고 하면 덜 재수없으니 좀 빼면서 해야 제 맛이다. 잘난 체에 탁월한 소질이 있는 나는 묻지도 않았는데 내가 단과대 수석졸업을 한 일이나 학사 졸업 논문이 학술지에 게재된 일 등을 은근슬쩍 늘어놓을 것이다. 마치 지금처럼, 사실은 내세울 것이 그것밖에 없다는 사실을 숨기면서.
간과 쓸개를 보여주며 지냈던 친구에게는 먼저 응석을 부릴 것이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병신같이 살았는지 버라이어티로 읊어줄 것이다. 교생실습 첫 주에 만취해서 담임선생님 집으로 실려가 토한 얘기나, 크리스마스에 혼자 냉동피자를 사와서 반은 점심 때 먹고 반은 저녁 때 먹은 얘기를 해줄 것이다. 내가 어떤 문제의식을 끌어안고 사흘 밤낮을 고민했는지, 어떤 사랑을 만나 설레고 가슴 아팠는지, 그렇게 간과 쓸개를 보여주고 내 뱃살까지 보여줄 것이다.
잘 지냈냐는 질문에 대답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묻는 사람과의 관계에 따라 내가 취해야 할 적절한 반응은 달라진다. 그런데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당최 내가 잘 지낸 건지 스스로도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나는 잘 지냈을까? 내가 기억해 낸 과거에는 잘 지낸 것과 못 지낸 것이 애매한 비율로 섞여 있거나, 이게 도무지 잘 지낸 건지 못 지낸 건지 모호한 것 투성이다. 무엇보다 천금을 주어도 되찾아올 수 없는 기억의 공백들은 나를 정말 슬프게 한다. 삶 속에서 유효하게 가동되는 진실들을, 별것일 수 없는 일상의 단면들을 나는 얼마나 많이 놓치면서 살았나! 애매모호함과 망각의 강을 넘어 나는 나에게 내가 과연 잘 지내 왔는지 대답해주기 위해 이 잡초 무성한 폐가로 돌아왔다.
#2.
아내가 사망한 날, 다음과 같이 세 가지를 결심했다. 일찍 일어나기, 시간 아껴 쓰기, 일기 쓰기.
-새뮤얼 존슨
사망할 아내도 없고 심지어 사망할 여자친구도 없는 나는 요새 일찍 일어나고 시간을 아껴 쓰고 일기도 쓴다. 꼭 외부적 충격이 있어야만 사람이 정신을 차리는 것은 아니다. 나의 경우처럼 내부적 모순이 극에 달해 어떤 식으로든 이 국면을 타파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 의식에 번뜩 정신이 들 수도 있다.
이번 달 초 나는 '체제의 한계가 왔다'는 것을 몸과 마음으로 감지하고 있었다. 체제의 한계라고 하니 뭔가 거창한데, 나는 무려 더 거창하게 '08년 체제의 한계'라고 이름까지 붙여주었다. 개인사적으로 08년 체제는 성취욕에 휩싸여 쉼 없이 자신을 소진하고 착취했던 학부 3, 4학년과 석사 1년 시절을 의미한다. 100미터 전력 질주를 42킬로미터나 하고 있었다고 할까.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글쓰기와 같은 종류의 일은 그런 08년 체제에서는 난망한 일이었다. 쉴 시간이 있어야 무언가를 창조해낼 수도 있는 법이다.
지난 날 내가 글을 썼던 이유와 글을 쓰지 않았던 이유는 한 가지였다.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나는 글쓰기조차도 성취해야 할 그 무엇으로 삼아왔던 것이다. 군대에 있을 때는 블로그가 그 수단이었다. 제대하자 나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고 그래서 글을 쓰지 않았다. 일종의 복선처럼, 말년 悲歌에서 나는 속물과 보헤미안을 대비시키며 제대 후 어떤 삶의 방식을 양자택일할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결국 '프랭클린 플래너'가 '청춘 비망록'을 이긴 것 같다. 요 몇 년 간 나는 마치 구원받기 위해 노동에 변태적으로 집착하는 칼뱅주의자와도 같았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왜 글을 쓰고자 하는가? 나는 비록 멍청하지만 적어도 여태까지 나의 삶의 방식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쯤은 안다. 이런 식으로 계속 살 수는 없다. 3년 동안 나는 思考를 잃고 살아왔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실어증에 가까웠다. 무언가 대단히 열심히 공부한 것 같지만 결국 내가 키운 것은 '훈련된 무능력' 뿐이라는 사실을 뼈아프게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문제를 마음으로 이해하지 못했고 삶 속에서 통합해내지 못했다. 3년 후에도 그럴 것인가? 그럴 수는 없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밤늦게 집에 돌아갈 때, 나는 수도 없이 '도저히 안되겠다.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해왔다. 그 때부터 나는 이미 해답을 알고 있었던 듯 하다. 이 지속가능하지 않은 체제와 지독한 교착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해답은 '글쓰기'다.
#3.
나는 유명해지기 위해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내 인생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그리고 더욱 창조적으로 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다. -아나이스 닌
그럼 어떤 글을 쓸 것인가? 특별한 계획은 없다. 계획이 있다면 '거리낌없이 생각하고 닥치는 대로 쓰자'는 것 정도. 이 블로그는 평소의 모든 생각들을 정리하는 곳으로 활용할 생각이다. 따라서 여기에 쓰는 글의 제 1독자는 보클레어 나 자신이다. 사실 3년이나 지난 지금 이 블로그에 아직도 누군가 들어오리라고 생각할 수도 없다. 누군가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그 독자의 요구와 구미에 맞추기 위해 내가 쓸 글들을 조정할 생각은 없다. 삶과 글의 일치를 지향한다면 내가 쓰는 많은 글들이 교육학이나 계량적 방법론에 관한 것일 테다. 아마 전공자가 아니면 관심도 가지 않는 내용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래도 나는 쓸 것이다. 이 블로그는 일차적으로 '내 생각을 정리하는 곳'이므로.
훗날 내가 부패하는 것을 막기 위해 여기에 블로그 글쓰기의 몇 가지 자기 원칙을 적어두려고 한다. 첫째, 매일매일 뭐라도 쓰기. 둘째, 젠 체 하지 말고, 어깨에 힘 빼고, 편하게 쓰기. 셋째, 무조건 솔직하게 쓰기. 진심이 아닌 글은 쓰지 않기. 넷째, 출처는 반드시 표기하기. 생각 도둑질 하지 않기. 이 네 가지 원칙은 글쓰기의 원칙이자 곧 삶의 원칙이기도 하다. 이 원칙들만큼은 꼭 지키려고 노력할 것이다.
존경하는 교육사회학자 중 오욱환이라는 분이 있다. <학문을 직업으로 삼으려는 젊은 학자들을 위하여 (한국교육학회 뉴스레터, 45(3), 5-9)>에서 그 분은 이런 말을 한다.
"읽고 쓰는 일보다 더 오래 할 수 있고 더 즐거운 일을 가진 사람은 학문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읽었는데도 이해되지 않아서 속이 상하고 글쓰기로 피를 말리는 사태는 학자들에게 예사로 일어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자들은 읽고 씁니다. 이 일을 즐기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의미를 부여한 일은 어렵고 힘들수록 더 가치 있고 즐거울 수 있습니다. 읽고 쓰는 일을 피하려고 하면서도 그 일에 다가간다면, 학자로서 적합합니다. (2면)"
국내 대학원의 '사노비' 신분으로 이런 저런 잡일을 하면서 자발적인 나만의 글쓰기를 꾸준히 해나간다는 것은 그렇게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기에서 열심히 읽고 써보려고 한다. 어차피 공부는 생활과의 투쟁인 바, 더 이상 글쓰기를 미룬다면 나는 학자가 될 기본적인 자질도 갖추지 못한 것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말이다.
- 2007/09/26 19:13
- 삶-비망록 2007
- beauclerc.egloos.com/794119
- 10 comments
이어지는 내용
- 2007/09/06 10:05
- 삶-비망록 2007
- beauclerc.egloos.com/715073
- 19 comments
고교 2학년 때의 동대문구장이 떠오른다. 그 날은 대통령배 전국 고교 야구 대회의 결승 진출 티켓을 놓고 인천고와 광주일고가 맞붙는 날이었다. 학교 풍물부였던 나는 응원부 친구들과 함께 경기장 뒤쪽 스탠드에 자리잡았다. 그리고 이내 훌리건들의 카니발이 시작되었다. 남고생들의 테스토스테론이 함께 폭발시키는 에너지는, 북채로 소가죽을 빵빵 두들기는 것이나 플라스틱 나팔을 불어대는 것만으로 해소될 성질이 아니었다. 훌리건들에게는 제물이 필요했다. 그 날 우리의 먹잇감은 광주일고 좌익수, 잊을 수 없는 그 이름 4번 타자 김홍일이었다. '홍일아 똥꼬가 바지먹는다' '야 니 여자친구 죽이더라' 따위의 저질 도발들이 필드 안쪽으로 쉴새없이 떨어졌다. 어디선가 '저 새끼 텔레토비 닮았다!'는 말이 들리자 누구랄 것도 없이 와하하 웃다가, 일제히 텔레토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보라돌이~뚜비~나나~뽀오" 그 굵은 목소리들이 합창하는 꼴에 정신 사나웠는지, 김홍일은 단순한 플라이볼을 놓치는 어이없는 실책을 범하고 말았다. 우리들은 배꼽잡고 웃으며 김홍일을 손가락질 했고, 그는 스탠드쪽을 한 번 보더니 고개 숙이고 벤치로 뛰어 들어갔다.
이어지는 내용




최근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