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 교육개혁안과 이해찬 세대

      이해찬 세대론 1부 - 5.31 교육개혁안과 이해찬 세대

    '이해찬 세대'라는 용어는 다분히 특정 정치인을 겨냥한 조소의 의미를 담고 있다. 1998년 재직 당시나 2004년 이해찬 총리 지명 때에도 그랬다. 심지어는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시점에서도 그 의미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경험적으로 인정하는 그 당시 교육 개혁의 좌초 상황이 이해찬 개인의 잘못이냐 아니냐의 문제로 변질된 데에 있다. 사회 현상은 매우 다양한 변수를 가지고 있다. 인물변수도 있고, 제도 변수도 있고, 더 크게는 구조나 체제 변수도 있다. 그런데 유독 인물 변수만을 가지고 당시의 상황을 논하는 것은 난센스다. 이는 일전에 <2009 로스트 메모리즈>라는 영화에서 안중근 의사가 이등박문을 저격하지 못했기 때문에 현대까지 조선이 일제의 식민지였다는 설정과 그 의식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담론 틀을 가진 사람과는 더불어 사회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기가 힘들다.
 
   소위 이해찬 1세대인 나는 당시의 교육 개혁 상황을 밀도있게 체험한 개인 중 하나다. 특목고에서, 일반고에서, 그리고 재수학원에서 현장의 논리와 개혁 이념의 틈바구니에 끼인 이들이 어떤 상흔을 안게 되었는지 실제로 경험했다. 청소년의 한 시기는 기억에 깊이 각인되어 잊혀지지 않게 마련이다. 스스로와 친구들의 경험만을 어렵지 않게 떠올려내면 그 자체로 훌륭한 체험 기술 자료가 되고 내러티브 연구가 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것은 '우리' 이해찬 세대들에 대한 좀 더 객관적이고 포괄적인 시각이다. 이해찬 세대가 어떤 사회 변동과 정치적 힘의 각축 사이에서 자리지움된 세대인지에 대해 사실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최저학력, 학교붕괴라는 낙인과 이해찬 개인에 대한 적의만 있을 뿐이었다. 무시할 수 없는 '이해찬'이라는 강력한 인물변수, 5.31 교육개혁안을 비롯한 포괄적인 제도변수, 그리고 포스트 IMF시대의 구조변수와 월드컵 세대라는 사회문화 변수 또한 생각해보면, 이해찬 세대가 가지는 교육사회적 의미는 분명히 남다르다. 어설프나마 나는 이에 대해 정리해보고 싶다. 이것은 내 스스로의 과거를 한 발짝 물러서 바라보기 위한 의미있는 회고라는 이유도 크다.

  
  1. 5.31 교육 개혁안과 이해찬 세대

   해방 이후 우리 나라 교육 정책의 성격이 질적으로 대폭 변화된 시기는 문민정부 들어서였다. 그 이전에 1964년 중학교 무시험 전형, 1972년 고교 평준화 정책, 1980년 7.30 교육 개혁 조치와 같은 굵직한 정책들은 베이비붐 세대의 교육열을 사회적으로 '소화해내기'에 급급한 대증 요법이었다. 베이비붐 세대가 각급 학교에 진학하는 시기와 정책의 시기가 맞물리는 것만을 보아도 알 수가 있다. 이 때는 교육적 비전에 입각한 적극적인 정책 구성이라기보다는 문제를 감소시키기 위한 방어적인 교육 정책이었다. 비전이라고 있어봤자 국가 주도 산업화에 필요한 인력의 공급이었는데, 이것은 방어적인 대책의 결과인 '학교 팽창'과 '국가 관리 시험제도'만으로도 충분히 달성되는 것이었다.

   김영삼 정부는 이전과는 달리 교육적 비전에 입각한 적극적인 교육 체제 개편을 구상한다. 교육적 비전이라기 보다는 교육 외적 요청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문민정부에서 귀에 박히도록 부르짖었던 '세계화, 정보화 시대의 도래와 세계 시장의 출현'은 90년대 초반의 분명한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창의력과 교육의 질적 수월성 추구'를 핵심으로 하는 5.31 교육 개혁안은 이런 배경에서 만들어졌다. 1994년부터 1997년까지 총 4차례에 걸쳐 사회 각계의 전문가들이 모여 교육에 대한 매우 폭넓은 틀을 세웠는데, 5.31 교육 개혁안은 통상 1995년도에 있었던 대통령 보고 형식의 깜짝쑈를 일컫는다. 교육 부문에 '신자유주의'라는 원칙이 도입된 바로 그 역사적인 순간이다. 이렇게 큰 틀을 만들어 놓고 세부적인 개혁안들은 '1998년 3월 1일부터' 점진적으로 실시해 가도록 단계적인 계획을 세워놓았다. 실제로 국민의 정부를 거쳐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이 포괄적 개혁안의 틀에서 벗어난 교육 정책은 없었다.

   이해찬 1세대는 바로 이 5.31 교육 개혁안의 첫 대상이 된 학년이었다. 문민정부의 5.31 개혁안은 1995년 발표 이후 몇 차례 수정을 거쳐 1998년 3월부터 시행되기로 예정되어 있었고, 문민정부 끝날 때 즈음에는 해방 이후부터 유지되어 오던 교육기본법, 초중등교육법, 고등교육법이 전면 개정되어 통과되기에 이르렀다. 이 법률과 정책의 적용을 받는 첫 세대는 1998년 당시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었다. 교육 정책이 아무리 조령모개라고 하지만 적어도 입시정책과 교육과정 정책은 당시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할 때의 시차를 계산하고 만들어진다. 교육 정책이 수립될 당시의 중학교 3학년은 그래서 중요하다. 김대중 정부는 교육 정책에 있어서는 5.31 개혁안의 틀을 그대로 수용하고 집행하는 데에 중점을 두어 집권한 직후부터 구체적인 정책을 입안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1998년 당시의 중학교 3학년들은 5.31 개혁안이라는 거대한 패러다임 시프트의 조류 위에서 각종 교육 개혁 정책의 십자포화를 맞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1998년도 당시의 중학교 3학년 학생들, 이들이 바로 이해찬 1세대들이다.

   김대중 정부가 세운 핵심 과제들은 문민정부의 그것과 대동소이했는데 교육도 마찬가지였다. 국민의 정부 초대 교육부 장관으로 입성한 이해찬은 실제로 5.31 교육 개혁안의 큰 틀을 거의 그대로 수용했다. 그리고 그의 강력한 개혁 성향에 입각해 5.31 개혁안에 기초한 국민의 정부 교육 개혁 프로젝트를 새로 만든다. 수행평가, 학교생활기록부, 무시험 전형 등을 골자로 한 <교육비전 2002 : 새학교문화창조>와 BK21 사업으로 유명한 <교육발전5개년계획>이 그것이었다. 대체적인 방향은 5.31 개혁안에서 떠왔으나 구체적인 입안에 있어서는 이해찬의 개혁 성향이 상당히 많이 개입이 되었다. 이 두 가지 정책은 이해찬 1세대들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배경이 된다. 당장은 장차 2002학번이 될 당시 중3 들에게 '한 가지만 잘해도 대학 간다'는 식으로 입학 전형이 발표가 되어 사회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멀게는 2002년 이들이 대학에 입학했을 때에 기다리고 있는 대학 환경, 이를테면 학부제를 결정지었다. 이 두 법안이 이해찬 세대의 학교 교육 환경을 결정지은 영향력을 생각하면 '이해찬' 세대라는 라벨링이 결코 무리한 것은 아니다.   <2부에 계속>

by 보클레어 | 2007/06/05 18:20 | 교육-에세이 | 트랙백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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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복숭아 at 2007/06/05 22:28
김연수의 '이등박문을, 쏘지 못하다.'라는 소설을 떠올렸습니다. 저는 7차 교육과정의 첫 세대라서 이해찬 세대를 겪어보지는 못했지만, 수업 시간에 선생님들이 애들이 다 망가졌다고 혀를 차시거나 '너희는 이해찬 세대보다 더 심하다. 건국 이래 최고의 바보들이다.'라던 기억은 나는군요. 자율과 창의력이라는 미명 아래 준비되지 않은 변화를 갑작스럽게 꾀한 것은 잘못이다 싶지만 너무 또 개인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는 것도 이상하네요. 어른들 말씀처럼 뭐 잘하는 놈은 어디서든 잘하는 법이니까요. 어중간한 저같은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Commented by 왕도비정도 at 2007/06/06 01:11
그러고보니 카테고리가 바꼈네요. <교육연구>라니 제 블로그 카테고리에 있는 <교육>보다 뭔가 포스가 느껴지는데요?^^ 형 블로그에 있는 카테고리 중에서 제가 좋아하기로 5등 안에 드는 카테고리입니다.

사범대생으로서 이렇게 1차, 2차...8차까지 각 교육과정의 커리큘럼과 시대상, 그리고 그런 교육과정이 학교현장에서 어떻게 나타났는지.. 등에 관한 전반적인 고민을 하나도 안했던 자신이 부끄럽네요. 문민정부 전까지의 정책이 방어적인 대안이었고 그것은 단지 '학교팽창'과 '국가관리시험제도'만 낳았다니.. 교육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공부없이 단순히 지금 눈에 보이는 교육문제를 이야기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세계화, 정보화시대의 도래에 맞서 신자유주의적인 교육정책이 들어섰고, 그것이 1998년의 5.31 개혁안이며 수행평가, 학교생활기록부, 무시험 전형등을 골자로 했다.. '한가지만 잘해도 대학간다'는 얘기에 대한 교육철학적인 검토, 그리고 이 말이 학생들에게 불러일으킨 반향, 대학에서 학부제에 끼친 영향..

2부가 기대됩니다.^^* 이해찬세대에 대해선 이름만 들었지, 전혀 모르고 있었거든요.
Commented by 여우비 at 2007/06/06 06:13
저 역시 이해찬 1세대로서, 2부 정말정말 기대됩니다; 귀에 꽂히도록 들었던 '이래서 이해찬 세대는...끌끌끌', 무슨 주홍글씨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뭘 해도 그 얘기부터 나오곤 했으니.
Commented by maybe at 2007/06/06 12:57
글의 길이가 조금씩 짧아지는 듯 하니,
아마도,
사업이 잘 되시는 듯.
그렇다면 참으로 좋네요.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했던 이야기입니다. 이해찬씨와 386, 그리고 논술과 사교육. 고3을 경험한 학부모들은 이해찬씨 이야기만 나오면 목에 핏대가 서더군요. 2부가 기다려집니다. 물론 상열지사 후 혹시 시간이 남으시면.

Commented by reve at 2007/06/06 15:40
늘 궁금했던 문제인데, 보클레어님이 풀어주실 이야기가 너무 기대되네요. 개인적으로는 이해찬 세대가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것에 안타깝습니다. 획일화된 교육과 시험제도에서 수능점수가 좀 높고 낮은 것이 무슨 능력의 척도가 된다고...중고등학생들 잡는 대학입시를 수십번 고칠 것이 아니라 대학 개혁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재민 at 2007/06/06 18:37
드디어 시작하는군ㅋㅋㅋ 이 논의만을 기다려왔소~~ 이 시리즈를 통해 형의 한국 교육에 대한 모든 토픽과 논의를 집대성하기를 바래용~ㅋㅋ
Commented by 보클레어 at 2007/06/06 19:54
복숭아 / '이게 다 노무현 탓이다'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생각이죠. '건국'이래 최고의 바보들은 그나마 점잖은 편이군요. 이해찬 1세대인 02학번은 단군 이래, 2세대는 유사 이래, 3세대는 선사 이래 최저 학력이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했었으니까요. 7차 교육과정 첫 세대는 이해찬 1세대만큼이나 악명이 높지요. 욕 많이 들으면서 공부하셨겠어요ㅋ

왕도비정도 / 복숭아님과 동갑내기로 역시 7차 교육과정 1세대인 왕도비정도군ㅋ '교육 연구'는 그냥 폼 잡을려고 한 거에요. 이게 연구라면 사실 많은 사람들 코웃음칩니다. 그런데 덧글 중에 5.31 안이 수행평가 등을 포함했다고 한 것은 조금 오해네요. 수행평가, 무시험 전형, 학교장 추천제, 수시 모집 등을 포함하고 있었던 법안은 5.31안을 구체화시킨 이해찬의 <교육비전 2002 : 새 학교문화창조>였습니다.^^

여우비 / 보클레어와 동갑내기 여우비님! 이해찬 1세대이시라니 너무 반갑군요. 정말 하루가 멀다하고 선생님들이 '이해찬 세대는.. 쯧쯧쯧'하곤 했지요. 낙인의 설움을 여우비님도 익히 알고 있으리라고 믿어요ㅠ 여우비님의 학창시절 이야기도 소중한 내러티브 연구 자료가 되겠군요 :-)

maybe / 상열지사라뇨;; 글을 조금 끊어서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블로그 대문에도 걸어놨지만 '블로깅 스타일' 좀 바꾸어보려는 사소한 시도랍니다. 사업은 무난하게 진행되고 있으나 블로깅에 미치는 영향은 대상포진이나 게으름과 비슷한 정도입니다. 그나저나 이해찬씨 대권도전은 역시 학부모들 때문에 물 건너 가겠군요. '일요서울'의 1면 기사에 '노무현의 히든카드는 이해찬'이라는 헤드라인이 실렸던데ㅋ

reve / 이해찬 세대의 긍정적인 측면에 대해서도 한 번 써볼 생각이에요. 저도 대학 개혁이 교육 개혁에 더 본질적인 것이라는 의견에 깊이 공감합니다. reve님이 기대해주신다니 열심히 풀어 써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재민 / 집대성은 무슨;; 그냥 1세대인 나와 2세대인 너의 고등학교 시절을 반추해보는 정도지. 우리 재민씨도 이해찬 이후 입시로 고생 좀 했잖어. 고생한 네 세월에게도 글 하나 바쳐야겠다ㅋ
Commented by 재민 at 2007/06/06 21:37
뭐 나야 이해찬 탓이라기보단..;;
Commented by 여우비 at 2007/06/07 03:25
잠깐 보클레어님! 제가 숫자 오타를 냈어요! 제가 많이 오타쟁이이긴 하지만 이건 좀 결정적이군요; 저 역시 이해찬 2세대로서; 라고 썼다고 생각했는데; 허헛ㅠㅠ
Commented at 2007/06/07 03:2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보클레어 at 2007/06/08 13:51
재민 / 이해찬 탓이라기보단 노무현 탓?ㅋ 13일에 말년 휴가 나간다. 인천이나 신촌서 한 번 보쟈스라.

여우비 / 그렇군요^^ 그래도 저는 빠른 84라서 동갑내기인 것은 맞네요ㅋ 이 '빠른'을 붙인 족속들은 박쥐와도 같아서 유리할 때와 불리할 때 마음대로 갖다 붙일 수가 있지요.

비공개 / 99년에 특목고 비교 내신제 폐지되고 나서 외고, 과학고 및 민사고 학생들의 3분의 1이 빠져나간 것을 그럼 익히 알고 계시겠군요. 다들 자퇴해서 검정고시치거나 전학가곤 했지요. 저는 전학을 간 케이스였습니다. 물론 대학 진학의 유불리만 따졌다면 그 학교에 남아있었을 거에요. 제가 있었을 때가 재단이 부도난 이후 학교가 좀 혼란스러웠을 때였거든요. 이에 대해서 언젠가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요. 그런데 님은 03년도에 정시로 들어가셨나요? 만약 그랬다면 저와 함께 나란히 앉아서 논술 시험을 보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겠군요. 그 때 마그리뜨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가 논술 문제로 나왔었는데 이를 기억하실지 모르겠네요. 님과 같은 사회계열을 지원했었으니 어쩌면 님과는 아주 먼 옛날부터 알고 지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Commented by 아지랑이 at 2009/06/11 15:03
"하나만 잘 하면 대학간다" 라는 말은 "동아일보"에서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최초로 쓴 문구였습니다. 다들 그 문구와 기사만 보고 곡해하고 오해하셨는데 그런데 그러한 문구를 보클레어님도 아무런 비판없이 그냥 쓰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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