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 저하 담론의 배경과 그 본질 by 보클레어

     이해찬 세대론 2부 - 학력 저하 담론의 배경과 그 본질

   
'단군 이래 최저 학력'이라는 말을 이해찬 1세대들은 매 수업 시간마다 들어야 했다. 모두가 한결같이 '너희들은 돌대가리다'라는 말을 합창해서 나중에는 그 말들에 무뎌지거나 정말 그런가보다 하고 믿어 버리곤 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누구도 이 '학력'의 정체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학력이 이전 세대보다 저하되었다고 말하려면 비교하는 기준과 시점이 명확해야하는데 그런 것이 없었다. 학력이란 모의고사 점수인가? 대학에 올라가서 학업을 따라가는 수학능력인가?  아니면 5.31 교육 개혁안에서 명시한 소위 창의력인가? 무엇보다 이해찬 1세대들이 '최저 학력'이라는 말을 듣던 그 시점에서 그들은 수능 시험을 보지도 않았었고, 대학에 올라가서 자신의 무지를 웅변한 적도 없었다. 게다가 이해찬 1세대들은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학원 모의고사를 보는 것이 금지된 최초의 학년이었다. 그래서 많은 학교가 몰래 모의고사를 실시해서 통계에 잡히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객관적인 학력의 전수조사와 비교가 시도된 적은 명백히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이해찬 세대의 학력 저하란 '체감 학력'의 저하이거나 사회적인 편견의 확산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학력 저하 담론'이 이해찬 세대만의 것이 아닐 뿐더러 우리나라만의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일전에 스누라이프 게시판에 초기 수능 세대인 95학번이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98년도 이후 수능이 쉬워져서 자신은 99학번 이후 후배들을 서울대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요지였다. 이에 대해 학력고사 세대인 92학번은 자신은 수능 세대 이후인 94학번을 서울대생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 술 더 떴다. 이런 식으로 계속 올라가다 만나는 것은 70년대 본고사 시절을 거친 교수님들의 푸념일 것이다. 어쩌면 3불 폐지 담론의 경험적인 근원은 이것일지도 모른다. 언론에서 이해찬 세대의 학력 저하 담론이 터져나오던 시기는 공교롭게도 1998년도 이후 쉬워진 수능 세대가 대학에 입학한 시기와 일치한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일본에서도 다치바나 다카시같은 사람이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라는 다소 선정적인 프레이즈로 학력 저하 현상을 지적 망국론으로까지 몰고 갔다. 고교생들의 학력 저하 현상을 질타하는 주체는 언제나 대학과 언론이라는 점, 그리고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쉬운 입시 정책'이라는 점은 일본과 우리 나라가 놀랍도록 닮아있다. 

   이 쉬운 입시의 기원과 배경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수능이 처음 도입된 것이 1994년이었다. 이 때는 일년에 수능 시험을 두 차례 보았었고 난이도도 상당했다. 그런데 문제는 수능시험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본고사라고 하면 1970년대를 생각하지만, 학력고사에서 수능체제로 바뀌면서 1994년부터 1996년까지 3년 간 대학별 본고사가 부활된 적이 있었다. 서울대를 비롯한 상위 대학에서 국, 영, 수 위주의 지필고사를 보았던 시기다. 수능 시험은 애초 취지 그대로 '대학수학능력'에 국한한 전형 자료로 활용하라는 것이 교육부의 방침이었고, 이전부터 대학 자율화의 요구가 거세었던 터라 김영삼 정부는 대학별로 다양한 전형을 개발해 활용하도록 허용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각 대학들이 내신과 수능의 실질 반영률을 낮추고 경쟁적으로 본고사를 어렵게 내는 폐단이 드러났다. 심지어 서울대 수학 본고사 커트라인은 100점 만점에 30점대에 불과할 정도였다. 이 때는 1980년 7.30 교육 개혁 조치 때 금지했던 재학생 학원 수강이 풀려서 학원가가 급성장하던 시기였고, 당연히 사교육비가 미친듯이 증가했다. 이런 현상을 본 교육부는 1997년에 대학별 본고사를 부랴부랴 금지시키고 수능 시험마저 쉽게 내겠다는 방침을 정하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1998년 수능부터는 이전에 비해 난이도가 상당히 낮아졌다. 역대 수능 기출 문제를 풀어 본 수능 세대라면 이 사실을 몸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만약 쉬운 수능이 학력 저하를 불러왔다면 이해찬 세대 이전 98학번들부터 학력 저하를 이야기해야 옳다. 실제로 대학 교수들이 학력 저하 현상을 일제히 지적했던 것은 이해찬 세대가 대학에 입학하기 전인 2000년 전후였다. 이 '쉬운 수능'이 대학 신입생의 학력 저하를 불러왔고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이해찬 세대들은 보충수업도 야간자율학습도 안 하는 날건달들이기 때문에, 이러다간 우리 나라 망한다는 이야기가 연일 언론에 실렸다. 그러나 주의할 것은 교수들이 느끼는 '체감 학력'이 낮아진 원인은 쉬운 수능보다 오히려 다른 변수가 더 크게 작용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바로 1997년 IMF 외환위기라는 구조 변수다. 메가스터디의 스타 과학탐구 강사 이범도 이와 같은 논지의 이야기를 한 바 있다. 학력 저하를 이야기하는 지표로 흔히 이용되는 것이 서울대 신입생의 수학, 과학 실력과 어이없게도 한문 실력이다. 교육과정에 선택 과목으로 있는 한문 실력의 저하를 탓하는 것은 먹물들의 푸념으로 차치하더라도, 미적분 실력이 모자란 이공대생의 이야기는 꽤 설득력이 있었다. 문제는 이것이 쉬운 수능 때문이 아니라 상위권 이공계 학생의 의대 선호 현상이 IMF 이후로 확연해졌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1997년 전후로 자연계열 배치표를 비교해보면 놀라운 변화가 관찰되는데 그것은 의약계열의 약진이었다. 수능 점수가 높은 이공계 학생, 거칠게 말해서 수학, 과학 학력이 높은 학생들이 IMF이전처럼 의대에 가지 않고 서울대 공대에 진학하는 것은 미친 짓인 세상이 되었다. 상위권 대학 이공계 교수들은 이전보다 학생들의 수학, 과학 수준이 떨어졌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던 큰 원인이 여기에 있다.

   또 하나는 '교차지원' 제도 때문이었다. IMF 이후의 의대 선호 현상은 교차 지원 제도와 맞물려 수학2를 배우지 않은 인문계열 상위권 학생들의 약 18% 정도가 대거 의대로 지원하는 현상을 낳았다. 중하위권 인문계열 학생들은 IMF이후 인문계열의 취업난으로 인해 공대 쪽으로 교차지원하는 경우도 많았다. 문과가 수능 점수를 얻기가 더 쉽기 때문에 이과 학생들의 '전향'도 학교 안에서 꽤 많았고, 심지어 이과에서 문과로 바꾼 학생들의 반이 학교에 따로 만들어지기도 했었다. 이렇게 교차지원으로 이공계 및 의대로 진학한 문과생들의 수학 과학 실력이 본래 이과생들의 수준과 같을 수는 없었다. 당연히 이런 학생들을 가르치는 이공계 교수들은 '미적분부터 다시 가르쳐야 한다'며 기초 학력에 대해 볼멘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혹자는 무분별한 교과목 선택제도로 인해 학생들의 학력이 낮아졌다고 하는데 그것은 이해찬 세대 이후 7차 교육과정 세대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이해찬 세대는 6차 교육과정을 공부했고 문과생들도 수학1에서 미적분을 모두 배웠지만, 7차 교육과정 첫 세대인 2005학년 학번 문과생들은 극한까지만 배우고 미적분을 배우지 않았다. 이런 7차 교육과정 세대의 교차지원은 실제로 '미적분도 모르는 이공계생'을 낳은 것이 사실이다. 

   1997년 이후 수능이 쉬워지고 IMF로 인해 대학 진학의 경향이 바뀌게 된 일련의 변수들을 생각해보면 02학번인 이해찬 1세대가 학력 저하의 '시조'로 낙인찍힌 것은 타당하지 않았다. 특히 '한 가지만 잘 해도 대학간다'는 말을 학생과 학부모가 철썩같이 믿어서 공부를 안 했다는 것이 근거로 활용되곤 하는데, 실제로 이해찬 세대들이 이것을 3년동안 믿고 공부를 안 했으리라고 믿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1999년인 고등학교 1학년 시절에는 다소 그런 경향이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2000년 이후부터 이해찬 1세대들은 이전 세대와 똑같은 입시 교육을 받으며 고2, 고3시절을 보냈다. 이해찬이 아무리 보충수업, 야간 자율학습, 모의고사 금지시켜서 '국가적으로 공부 안 시키는' 정책을 만들었다고 해도, 이해찬 세대들은 대부분 0교시에 방과후 보충 수업에 야자까지 모두 했다. 모의고사도 학교나 심지어 학원 강의실을 단체로 빌려서 몰래 보았던 것은 이해찬 1세대들의 집단 기억이다. 설령 정책을 충실하게 따르는 학교라고 할 지라도 방과 후에 일찍 끝난 고2, 고3학생들이 과연 빈둥빈둥 놀았을까? 2000년 과외 금지 위헌 판결 이후 날개를 단 사교육 시장을 '공부는 학원에서 하고 잠은 학교에서 잔다'고 비판하면서, 학교에서 많이 공부 안 시킨다고 학생들의 학력이 떨어졌다고 말하는 것은 대단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학력 저하라는 '체감 현상'의 원인은 매우 다양하게 지목되고 필요에 따라 변주된다. 이를테면 고교 평준화 논쟁 중에는 평준화가 학력을 떨어뜨린 원인이 되고, 3불 정책이 논란 중일 때는 제한된 학생 선발권이 학력 저하의 문제로까지 전이된다. 학력 저하 담론은 어떤 교육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한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해찬 1세대들은 2002학년도 입시안 논란이 배태한 대학과 언론들의 불평의 타겟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마치 2008학년도 수능 등급제 입시안이 3불 폐지를 비롯한 대학 경쟁력 담론을 불러 온 것과 매우 유사한 정치적 상황이었다. 이해찬이 1998년 마련한 '2002학년도 입시안'은 수능 점수 위주의 특차제도와 특목고 출신학생에게 적용되던 비교내신제도 폐지하여 수능 성적 우수자 위주로 선발하던 많은 상위권 대학들의 반발을 샀다. 그렇다면 대학 입장에서는 수능 성적 우수자, 소위 학력 우수자를 뽑는 것을 방해받기 때문에 어김없이 '학력 저하' 이야기를 들고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3불 정책 폐지를 둘러 싼 작금의 담론 행태와 거의 동어 반복에 가까운 이야기들이 1999년 당시에 있었다. 이해찬 세대의 학력 저하 현상은 그래서 다소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과장된 측면이 있다. 여기에는 1990년대 후반부터 불거져 나오던 '교실 붕괴' 담론과 교권 문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이는 다음에 살펴보기로 한다.  <3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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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Arouet 2007/06/06 19:23 # 답글

    '학력 저하 현상'에 대한 교수/교사들의 언급은 학생들에게 무슨 '원죄'라도 뒤집어 씌우려는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땐 '빅뱅 이후 최악의 학력'이라는 얘기도 들었습니다-_-a 그런데 항상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궁금했던 것은,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인가 하는 점이었어요. 예전에 조선일보인가 중앙일보를 보니 수학과 한자가 기준이었고, 보클레어님 글에서도 수학/과학/한문 실력을 꼽고 있군요. 그런데 그게 그렇게나 커다란 핵심 요소인지, 인문대생인 저로서는 궁금합니다.(물론 이공계에서 수학과 과학은 절대적으로 중요할 것이겠지만요) 교수들이 항상 '옛날보다 실력이 떨어져서...'라고 말하는 걸 들을 때마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인지 궁금하거든요(솔직히 말하자면 속이 탑니다)

    그리고 수능이 쉬워졌다는 것과 학력이 저하되었다는 데에 큰 관련이 있을지, 그리고 관련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만이 유일한 관계일지도 살짝 의문입니다. 수능이 쉬워지면 학교에서 공부하는 수준도 낮아지게 되어서 학력이 저하되는 것인지, 그건 대학 수업을 따라갈 능력도 낮아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지. 한국의 대학들이 성적 우수자를 뽑으려고 발버둥치는 건 자주 보고 있지만 막상 학생들의 수업의 질 향상에 얼마나 애쓰는가에 대해 다소 회의적이기도 하구요. 학력 저하라는 현상이 정말로 있다면 그건 오직 학생과 공교육(중등교육)의 탓이기만 한 것인지, 대학 스스로에게는 책임이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의문도 던져봅니다. IMF 이후로 대학 내에서 소위 '잘 나가는' 학과들만 더 잘 나가게 되고 '빈한한' 학과들(대부분 기초학문 관련 학과죠)은 더 빈한해지는 양극화 현상이 심화된다는 점 역시도 학교 내에서 학력이 저하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건 아닐까요.
  • 2007/06/06 19:4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07/06/07 01:4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다이몬 2007/06/07 08:41 # 답글

    저는 수능 1세대입니다. 입시라는 것에 대해 가장 심하게 변화를 겪었던 세대였죠. 우리나라의 교육은 어떤 방법으로도 고칠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내렸다고 느끼지만, 그것이 이해찬 세대라는 말도 안되는 낙인찍기로 봐서는 안된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오히려 교육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적어도 학력고사시절처럼 암기식이지만도 않을 뿐더러 초기 수능세대처럼 아이큐 테스트는 아닌 듯 싶네요.
  • 재인 2007/06/07 10:41 # 답글

    장문의 덧글을 달다 날렸습니다 - -; 허무하군요. 여튼 전 02학번이구요, 이해찬 세대(; ) 로서 이 글을 그냥 넘길 수가 없더군요 하하. 저도 이해찬 세대의 학력저하가 어쩌니..하는 부분엔 다소 과장이 섞여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그 당시 시행되었던 정책의 취지와는 별 상관없는 비난이란 생각도 들구요. 하나 제가 다니던 학교의 경우는, 충실하게 바뀐 정책안을 따라서 보충 수업, 자율 학습도 없애고 토요일엔 아예 학교 수업을 하지 않는 등.. 2시 50분이면 하루 일과가 끝나는 아주 자유로운 교풍을 자랑했었답니다. 물론 이건 학부모와 학생들 쪽에서 항의가 많았고 결국 고3때는 자율 학습도 하긴 했습니다. 또 같은 지역에서도 학교마다 성격이 다르긴 했지만요. 결과적으로 대입의 성과(; ) 에 있어서 눈에 띄는 차이가 있었구요, 특히 따로 학원이나 과외를 다닐만한 능력이 되지 못했던 학생들의 성적 저하가 눈에 많이 띄었어요. 저 개인적으로는 그런 학교에 가서 참 행복했습니다만.. 아마 학부모들은 많이 원망했겠죠. 상위권 대학에 학생들을 밀어 넣는 것이 교육의 성과를 판단하는 기준이라 생각하는 이들에겐 충분히 욕할만한 사람이었을 거에요. 의식을 바꾼다는 건 아무래도 힘이 드는 일이니까요.. 뭐 자발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위한답시고 학원으로 걸어 들어가는 학생들에게 새로운 가치관을 심어 넣지 않는 이상, 아무리 개혁한다 떠들어대도 바뀌는 건 별로 많지 않겠죠. 의도야 어쨌든, 교육의 부익부 빈익빈(; ) 현상을 심화시킨 측면도 있었다고 봅니다.

    공부를 잘하고, 인생에서 성공하는 것- 의 기본이 특정 과목 점수가 높고, 소위 말하는 유명 대학 문에 어떻게든 걸쳐보는 걸로 인식되는 이상 바뀌기 힘들 거라 생각해요. 물론 그렇게 되야겠지만요.
  • 보클레어 2007/06/08 14:14 # 답글

    Arouet / 교수님들이 고등학교에서 '만들어진 인재'를 원하는 것이 근본적인 원인일 겁니다. 이것은 우리 대학교육의 심각한 '태도 문제'이기도 하구요.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학력 저하 현상으로 교수님들이 '체감'하는 것은 문과에서는 원서 텍스트 강독 능력 정도일 것이고, 수학과 같은 단계별 지식 구조를 가진 과목의 경우는 학습의 선행능력이 좀 더 분명하겠지요. 그런데 교수님들은 1학년 학생들 데리고 무리없이 강독 수업하고 이과에서는 고등학교 올림피아드 수준의 문제를 무리없이 강의 하기를 원해요. 이것은 장상호 교육학에서 '고압제'라고 명명합니다. 낮은 품위에 있는 학습자의 수준까지 내려가 그들을 교육해서 끌어올리려는 생각을 안 한다는 거에요. 일종의 교육적 횡포죠. 그러나 임지순 물리학과 교수가 증언한 바 있듯이 올림피아드 공부한 과학고 학생들과 일반고 학생들이 처음에는 차이나지만 3~4개월 지나면 '교육'으로 인해 그 차이가 메꾸어 진답니다. 즉, 애초에 중등 교육 수준을 충실히 이수한 아이들 중에 가능성이 있는 학생들을 충실히 가려뽑아, 대학 교육에서 필요한 능력은 대학에서 가르쳐야 한다는 겁니다. 작금의 3불폐지 본고사 논의 중에서 심각한 논점이 되어야 할 부분이죠. Arouet님이 말씀하신 '과연 이것이 중등교육만의 문제인가'라는 의식에 저는 깊이 공감합니다. 한편 대학의 학과 양극화 현상이 학력저하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많이 생각해보지 못했군요. 좋은 화두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부분은 4부에서 이해찬 세대와 고등교육정책에서 한 번 써보도록 할게요^^
  • 보클레어 2007/06/08 14:22 # 답글

    비공개 1 / 정말 신선한 분석입니다. 특히 학력의 개념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부분은 교육학에서 더욱 엄밀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21세기에 필요한 학력이란 정보의 발췌, 활용 능력과 자기주도적 학습능력, 창의력이라고 거창하게 말해놓고서는 정작 학력을 말할 때 애들 수능 성적 평균이 어떻고 소크라테스를 아느니 미적분을 아느니 이런 말이나 하고 있으니까요. 이것은 어떻게 보면 미국에서도 70년대부터 지속되어 왔던 보수주의 교양교육론자들과 진보주의 자유교육론자들의 논쟁과도 많이 닮아 있습니다. 아이들의 학력을 비판할 때는 대개 보수주의자들이 학생의 전통적인 인지적 학문 소양을 척도로 삼는데 진보주의자들은 이를 '경험론'적으로 비판하곤 했지요. 우리는 사실 이런 사상적 기반도 없이 그냥 저냥 기성세대 푸념 식으로, 그리고 산업화 시대에 확산되는 국가 위기론식으로 학력저하를 말하고 있는 경향이 큰 것 같습니다. 한편 인터넷의 보급시기와 이해찬 세대에 관한 사회문화적 분석도 정말 흥미진진한 주제군요. 님을 보면 언제나 사회과학도 개연성있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 보클레어 2007/06/08 14:38 # 답글

    비공개2 /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돌이켜보니 좀 단정적인 서술이군요. 제가 강조하려던 바는 학교에서 보충수업, 야자, 모의고사보는 강제적인 학습량과 학생들의 학력을 무리하게 등치시키는 신화에 대한 비판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붙잡아두지 않아도 분명히 사교육이라는 변수가 크게 작용을 하니까요. 무엇보다도 2000년 이후 학원가와 개인 과외 시장의 성장세가 두드러졌다고 통계자료가 말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3년 내내 학교 현장이 이해찬의 방침을 따라야 했던 것도 아니죠. 김대중 정부는 이해찬-김덕중-이돈희-문용린-한완상-이상주 등 가장 많이 교육부 장관을 교체한 정권 중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1999년 당시의 방침들의 기본적인 기조는 유지되었지만, 이해찬 식으로 현장에 강한 압박과 임팩트를 주는 것은 갈수록 많이 줄어들어서 고2때부터는 많은 학교가 0교시와 야자를 했습니다. 그래서 OECD시찰단이 이 광범위한 0교시 현상을 문제 삼자 신문지상에서도 일제히 비판을 했죠. 또 한편으로는 교육부의 방침이 서울시 내에는 많이 먹혀드는데, 아직도 보수적인 교육 분위기가 강한 지방에서는 쌩까는 경우가 많아요. 대구 같은 경우는 지자체 교육위에서 아예 서울대 많이 보내기를 공식적인 목표로 삼고 관내 고등학교들을 경쟁적으로 야자시키기도 한다니까요. 이런거 중앙에서 일일히 제재할 수가 없었던 거죠. 이해찬 세대가 보충수업, 야자, 모의고사, 0교시 이런 거를 대부분 했다는 것은 분명히 수정해야할 서술입니다만, 3년이라는 시간과 각 지자체의 공간적인 다양성등을 생각해보면, '이해찬 세대는 국가적으로 공부 안 시켜서 학력이 개판이다'는 명제는 신뢰성이 좀 떨어지지 않나 그런 생각입니다. 결국 '경험적인 측면에서 생각보다 큰 스펙트럼을 가진다'는 님의 소중한 견해에 수렴하는 의견이군요.^^
  • 보클레어 2007/06/08 14:43 # 답글

    다이몬 / 수능 1세대이시면 그 어려운 수능 두 번이나 보시고 대학별 고사까지 보셨겠어요. 기출문제라곤 학력고사밖에 없었을 것이고 학교 교육도 학력고사 위주로 돌아가던 시기였을텐데. 저도 많이 살지는 않았지만;; 교육이 점차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소화하는 교육과 사회 내의 역량이 많이 부족한 것을 통탄할 뿐입니다. 이를테면 논술 위주의 입시가 지향하는 학습 과제와 방향성은 매우 바람직하지요. 그런데 이를 소화해낼 만한 교육적, 사회적 인프라가 없어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역시 교육적 신뢰의 문제일 것이구요. 어쩌면 이해찬 세대의 낙인찍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이러한 개혁 요소가 학교 현장에서 거부 반응을 일으킨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 보클레어 2007/06/08 15:05 # 답글

    재인 / 재인님 반갑습니다^^ 링크해놓고 몰래 드나들기만 했었는데 이해찬 1세대라는 강력한 끈이 이렇게 이어주기도 하는군요. 평소에 님 글을 재밌게 구독하는 저로서는 날아간 장문의 덧글이 더욱 애석하게 느껴집니다;;

    위에 비공개2님과 똑같은 논지의 좋은 지적을 해주셨고, 저는 이를 겸허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입장입니다. 이해찬 세대의 정책이 각 학교 현장에 정말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반응을 일으켰는데 저는 다소 단정적으로 서술했지요.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다소 무례한 답글입니다만, 비공개2님에게 달았던 답글에 정리해두었으니 참고하시면 됩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해찬 세대에 도입된 현장의 정책 중에 '학교운영위원회'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것이 단위학교의 의결기구는 되지 못하고 단지 심의기구였을지언정, 학부모들이 학교에 압력을 가하는 주요한 통로로 기능한 사실입니다. 보충수업, 자율학습 안 시키는 것을 두고 학부모들의 반발이 심했다는 말씀 정말 정확한 지적이신데 대개 이 학운위라는 통로를 통해서 애들 대학 잘 보내려면 자율학습 시켜야한다, 교과목 위주 보충수업해야한다는 학부모들의 의견이 학교에 압박으로 작용합니다. 그래서 빠르면 고1말부터, 늦어도 고2말부터는 많은 학교에서 야자하고 보충수업하고 0교시하고 그랬죠. 고3때도 이 정책 충실히 지키는 학교는 살펴보면 이런 배경이 있습니다. 지금은 교육감이 주민 직선제로 바뀌었지만 당시에는 학운위단의 간선제였죠. 이 때 교육감이나 교장 근평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교장들은 상급 교육 행정기관의 눈치를 많이 보았어요. 제가 다니던 학교도 교육감 선거 준비하는 교장을 둔 학교여서 끝까지 정책 충실히 따랐습니다만, 결국에는 아이들 진학 실적 의식해서 다들 시키더군요.

    한편으로는 방과후에 학생을 놓아버리는 현상이 의도와 상관없이 교육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낳았다는 것은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그리고 그 원인이 결국은 대학 진학과 입시 위주의 고등학교 교육 풍토에 있는 한, 어떤 교육 개혁 정책도 쉽게 성공하지 못한다는 사실도요. 사실 이해찬 세대론의 핵심은 거기에 있지요. 개혁 이념과 현장의 부조화, 그 틈바구니에 끼여 상흔을 얻은 세대. 역시 이해찬 세대라 잘 알고 계시는군요. 앞으로도 좋은 이야기들 많이 부탁드립니다.^^
  • maybe 2007/06/15 04:23 # 답글

    대기업들이 대학졸업생이 "업무능력이 부실하다"는 평가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요?
    김대중 정부 이후 교육 정책에 대한 의구심은 "학력 저하"보다, "기회의 균등한 제공", "사회 계층의 고착화에 대한 견제"라는 교육의 중요한 기능을 무너뜨리지 않았나 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사회에 대한 범죄이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대학 입시가 다원화 될수록, 학원 산업은 번창하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중산층에 지워지는 것이 현실아닌지요?
    과격한 선배는 이야기만 나오면, 총으로 쏴 죽여야만 살인이냐, 중고등학생을 자살로 내모는 것은 살인이 아니냐, 이리도 큰 일을 저질러 놓고, 머리 긁적이며 그것까지는 생각 못했다, 실수였다, 라고 하면 다냐고 핏대를 세우시죠.
  • djinni 2007/06/15 16:04 # 삭제 답글

    완전 공감합니다. 다음글 기대하고 있습니다 ^^
    미적분못하는 이공계생... 요건 사실 교수가 문제입니다.
    그거 대학에서 공부한다고 크게 시간 뺏기는거 아니거든요. 오히려 입시용으로 배운 미적분은 전혀 도움이 안됩니다. 결국 다시 공부하는 사람이 태반이죠.
    우리나라의 교수들은 학생들 가르치는것에 상당히 인색합니다. (물론 전부는 아님)
    아예 관심 없거나 적당히 하거나 자기 연구에 이용 하는 정도....
    이런거 따지면 대학에선 교수들도 나름 약자이기 때문에 말들이 많아 집긴 합니다만 학력저하니 이런 다소 엉뚱한 얘기들 교수님들도 반성해야죠
  • 수롤 2007/06/15 19:49 # 답글

    연구논문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군요... 역시 경탄스럽습니다...으와..
  • 보클레어 2007/06/16 17:07 # 답글

    maybe / 대기업들이 대학졸업생의 업무능력 운운하는 것은 사실 대학 입시의 문제라기 보다는 고등교육과 직업 세계의 접속 불량, 즉 고등교육의 문제라고 봅니다. 그것도 제가 보는 방식은 이른바 기업의 요구를 대학에 적극 반영해서 대학 교육 체제를 전문 과정으로 재편하는 이른바 산학 협력의 관점과는 조금 다릅니다. 반대로 대학 교육은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라 '높은 수준의 제너럴리스트'를 양성하는 리버럴 아트 형식이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어요. 왜냐하면, 대학 전공과 취직과의 일치도가 현저히 낮고, 설령 일치한다고 하더라도 대학에서 배운 지식을 구체적인 기업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제로에 가까우니까요. 무리하게 기업 요구식 대학 체제 개편해가면서 효용도 떨어지는 전문 교육 할 바에야 미래 사회에서는 통합적인 능력을 기르는 리버럴 아트 교육을 하는 것이 더 효용이 높다고 봅니다. 미국의 힘은 이를 중시하는 학부 교육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기업에서 신임자들의 업무 능력 운운하며 대학의 교육을 탓하는 것은 사실 재교육 비용과 노력이 아까워 하는 것이고, 대학 입시에서 '만들어진 인재'를 원하는 교수들의 조바심과 다를 것이 없죠. 평생 학습 사회에서는 기업도 사회교육과 재사회화의 많은 부분에 투자하고 일정한 역할을 담당해야하는데 말이죠. 좀 더 장기적이고 총괄적인 교육의 관점, 인재상, 고등교육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정리되어야 할 시점이라고 봅니다. 너무 고등교육이 '기업 사회식 구조 개편'의 첨병에 서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김대중 정부 이후의 교육정책은 역시 신자유주의적 교육 개편안인 5.31 교육 개혁안의 영향 아래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참여정부도 마찬가지였구요. 사회 계층 분화에 대해 교육이 어떤 기능을 해야하는가 하는 규범적인 차원과, 실제로 그 기능이 얼마나 약화되어왔는가 하는 팩트는 아직 쉽게 단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5.31교육 개혁안이 교육과 사회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왔는가는 명백하죠. 그래도 우리 강력하신 교육부가 힘겹게 방어(?)해낸 평준화, 3불, 교육개방 유보 등의 브레이크도 많습니다. maybe님이 지적해주신 교육기회의 형평성에 대해서는 근 8년 간 우리 사회의 뜨거운 쟁점이었고, 앞으로도 오래도록 논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장 이번 대선에서 야당이 집권하면 자립형 사립고, 평준화, 본고사와 고교등급제가 원점에서 다시 논의될 가능성이 클 것입니다. 당장 내년이 기대되는군요.
  • 보클레어 2007/06/16 17:27 # 답글

    djinni / 만나서 반갑습니다. 교수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겠지만 '학력 저하' 담론에서 교수들의 책임이 크다는 djinni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이것은 사실 한국 사회 교육의 '질 관리 시스템'이 형편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근 몇 십년 간 한국 교육은 사학 주도의 양적 팽창과 아래로부터의 진학열, 그리고 고학력화가 거대한 흐름이었죠. 최대한 정원 늘려서 등록금으로 재정 확보하고, 빨리빨리 졸업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던 겁니다. 한국 사회 학교의 유급률이 제로에 가까운 것은 결국 컨베이어벨트에 올려진 생산품이 어떤 검증도 없이 포장되어 나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죠. 이런 이유로 교수들은 열심히 가르치고 학생들의 질관리를 시킬 유인을 잃어버린 겁니다. 유급시키려고 해도 학교 차원에서 알게 모르게 제어해버리는 상황이 발생하니까요. 또 하나는 70~80년대의 학원 데모 문화와도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이 때 학사관리가 엄청나게 풀어졌죠. 하루가 멀다하고 학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상황에서 교수들이 열심히 가르치지 않는 문화가 생겼다고 합니다. 이것은 정범모 교수가 근래에 <학문의 조건>이라는 책에서 한 말입니다. 학력 저하라는 말은 분석적으로도 모호하고 매우 다양한 측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누구에게만 책임을 지울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djinni님 말씀처럼 교수에게도 큰 책임이 있고, 대학 당국에도 책임이 있고, 중등교육과 대학 입시 제도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겠죠. 그렇지만 저는 중등교육보다는 교수를 비롯한 대학 교육이 자신들의 교육적 책임을 방기하는 문제에 더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다음 포스팅은 이른 시일 내에 올리겠습니다.^^;; 말년 휴가 나오니 늘어지는군요. 제 게으름을 자책하고 있습니다.
  • 보클레어 2007/06/16 17:30 # 답글

    수롤 / 이거 연구 논문이라고 교수님에게 보여드렸다가는 천둥같은 호통이 떨어질 것 같은데요;; 좋게 봐주셨다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민소법 시험이 끝나셨나보군요! 예고한 포스팅 기다리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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