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내가 시사저널을 보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언제부턴가 아버지 책상 위에 항상 놓여있던 빨간 띠를 두른 시사 주간지를 들추어 보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아침 신문에서는 잘 볼 수 없었던 사건의 의미들이 풀어 헤쳐져 있었고, 고등학생이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의 그림자와 절대 악이라고 믿었던 것들의 눈물겨운 사정이 기록되어 있었다. 매주 배달되는 이 매거진을 반드시 커버 투 커버로 넘겨보았다. 고 3 시절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 소위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시사저널만 읽다가 감독 교사에게 빼앗긴 적도 있을만큼, 이 매거진은 나를 충분히 매혹시켰다.
공부는 안하고 매거진이나 읽었기 때문인지 나는 재수를 하게 되었다. 그것도 악명높은 입시의 최전방 진군 대대인 '입시기숙학원'에서 였다. 숨 막히는 그 곳에서, 그것도 온 나라가 들썩거리던 2002년 월드컵 기간에 어떻게 1년씩이나 견뎠을까 생각해보면, 그 이유 중 하나에 어김없이 시사저널이 있다. 나는 사감선생님에게 부탁해서 시사저널 정기구독을 허락받았다. 그리고 또 삼수할 생각이었는지 자습시간마다 시사저널을 읽었다. TV와 신문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꽉 막힌 그 곳에서 시사저널은 내가 세상을 보는 유일한 창이었다. 누구나가 월드컵에 열광하고 있을 때 시사저널에 실린 인도의 맹인 소녀 소니아의 이야기를 읽었다. 소니아는 다섯 살 때 부터 하루에 12시간 이상씩 축구공을 바느질했다고 한다. 인류 최대 축제의 제단에 피와 눈물로 얼룩 진 아이들의 작은 손이 바쳐진 것을 생각하면, 우리 나라가 승승장구해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초국적 기업이 제 3세계 어린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해 번 돈에 기대는 월드컵의 그림자를 시사저널이 아니라면 그렇게 비중있게 이야기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대학에 들어와서도 시사저널은 변함없는 친구였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갈 때 내 손에는 접어 든 시사저널이 있었다. 어느 때보다 사회갈등이 첨예하게 표면화되었던 참여정부 시대를 시사저널은 균형적인 시각으로 보도해주었다. 그 중에서도 신호철 기자가 사회 문화면에 쓰는 기사들을 즐겨봤는데 특히 교육에 관한 기사들을 좋아했다. 2004년 초 평준화와 관련한 논문 분석 수업을 듣고 돌아오던 중 보았던 신호철 기자의 기사를 잊지 못한다. 그 때는 (이건 뭐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평준화를 겨냥한 경제학자들의 공세가 통계 실증주의를 가장한 이데올로기로서 기승을 부리던 때였다. 거의 모든 언론에서 경제 이념으로 교육을 통제하려던 그 때에, '교육'의 입장에서 합리적으로 평준화 정책을 기술한 신호철 기자의 글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이후로도 고교 등급제나 특목고, 자립형 사립고 설립 등에 대한 문제에서도 신호철 기자의 글은 언제나 '합리적인 교육 기사'에 대한 나의 갈증을 해소해주었다.
논산 훈련소에서도 여자친구가 편지와 함께 보내준 시사저널의 황우석 관련 기사들을 보기도 했고, 배치받고 짬 좀 되자 인터넷 구독 신청을 해서 꾸준히 보았으니, 시사저널과 나의 인연은 족히 7년은 될 것이다. 모든 기사를 꼼꼼하게 읽거나 비평하지는 않고 그저 좋은 읽을거리라는 자세로 시사저널을 대했기 때문에 애독자라는 이름표를 붙이기에 나는 턱없이 모자라다. 그렇지만 나와 시사저널은 적어도 7년 지기 좋은 친구다. 그렇기 때문에 작년부터 착잡하게 바라보던 시사저널 사태가 기어이 직장폐쇄와 기자들의 집단 징계로 치닫는 것을 보는 나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심하게 말하면 친구가 강도의 칼에 찔려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 정도의 충격이다.
문제는 그 강도가 친구 이름표를 달고 나에게 찾아와 친구인 척 어깨동무할 때이다. 빨간 띠를 두른 시사저널의 이름표를 그대로 달고, 정치적으로 편향된 기사와 삼류 소재주의에 빠진 글들을 조악하게 편집해놓은 '주간중앙'이 내가 7년 간 보아 온 '자유만큼 책임을 생각하는 언론' 시사저널이란다. 고종석, 이나미, 신광영, 도종환 필진의 무협지처럼 재미있던 시론이 정진홍, 유석춘과 같이 보수 진영에 깊숙히 몸을 담고 있는 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시사저널을 받아보면 가장 먼저 펼쳐보던 역대 문정우, 서명숙, 이윤삼 편집국장들의 편지가 온 데 간 데 없다. 고재열 기자의 균형있는 정치기사 대신 노무현 때리기에 적극 동참한 메이저 신문의 논조가 여기저기서 묻어난다. 시사저널을 조금이라도 보았던 사람이라면, 이제 절독만으로는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예전의 시사저널을 볼 수 없게 되었다는 안타까움과 애통함만큼 금창태 사장과 삼성 일당에 대한 분노를 절제할 길이 없다.
군대라는 조직에 있는 만큼 나는 권력의 속성에 대해 아주 잘 안다. 권력이 정말 무서운 것은 상대방의 의지에 관계없이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킨다는 표면적인 차원에 있지 않다. 권력은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고 전염된다. 권력에 무릎꿇고 상처받은 자조차 점차로는 권력이 원하는 폭력과 불합리의 질서를 내면화한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권력의 질서에 젖어 들어 권력은 결과적으로 재생산을 거듭한다. 시사저널 기자들을 비롯한 우리 국민들이 이번 자본 권력과의 싸움에 결코 무릎꿇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나는 가끔 한편에서는 대자본의 횡포로 사람들이 쓰러지고 울부짖는데 가판대에는 환각제와 같은 광고의 이미지만 가득한 섬뜩한 장면을 상상한다. 사람들은 가판대를 둘러보고는 세상이 완벽하고 평온한 듯 안심하고 지하철을 타고 '돈' 벌러 간다. 직장에서 아무리 힘들고 부당한 일을 당해도 행복을 사는 지상 가치인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돈을 벌어 자본이 제공하는 '행복'을 산 사람들은 그 시스템 안에서 자본에 유리한 사고와 행동을 하며 살아갈 것이다. 분명히 소리없이 고통당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을 아무도 모르는 사회는 언론을 통제함으로써 가능하다. 어쩌면 지금도 그런 사회일지 모른다.
이번 시사저널 사태가 비단 한 잡지사의 해프닝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완전소중 PD수첩의 공이 컸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금창태 사장의 몰상식에 분노하고 삼성의 언론통제 문제에 대해 주시하고 있다. 시사저널 기자들의 소신있고 이유있는 저항이 자본의 문제를 이렇게 극명하게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은 어떻게 보면 기사 수십 개보다 가치가 있을지 모른다. '자유만큼 책임을 생각하는 언론'을 만들던 사람들이 그 책임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에 대해 나는 무한한 신뢰와 지지를 보낸다. 그리고 나는 7년지기 친구를 되찾기 위해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테니, 시사저널 기자들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자유 언론의 승리를 자축하는 이윤삼 국장의 '편집장의 편지'를 보고싶다. 그리고 내가 아버지가 되었을 때, 내 책상의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자랑스런 시사저널을 놓아 두고 싶다.
공부는 안하고 매거진이나 읽었기 때문인지 나는 재수를 하게 되었다. 그것도 악명높은 입시의 최전방 진군 대대인 '입시기숙학원'에서 였다. 숨 막히는 그 곳에서, 그것도 온 나라가 들썩거리던 2002년 월드컵 기간에 어떻게 1년씩이나 견뎠을까 생각해보면, 그 이유 중 하나에 어김없이 시사저널이 있다. 나는 사감선생님에게 부탁해서 시사저널 정기구독을 허락받았다. 그리고 또 삼수할 생각이었는지 자습시간마다 시사저널을 읽었다. TV와 신문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꽉 막힌 그 곳에서 시사저널은 내가 세상을 보는 유일한 창이었다. 누구나가 월드컵에 열광하고 있을 때 시사저널에 실린 인도의 맹인 소녀 소니아의 이야기를 읽었다. 소니아는 다섯 살 때 부터 하루에 12시간 이상씩 축구공을 바느질했다고 한다. 인류 최대 축제의 제단에 피와 눈물로 얼룩 진 아이들의 작은 손이 바쳐진 것을 생각하면, 우리 나라가 승승장구해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초국적 기업이 제 3세계 어린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해 번 돈에 기대는 월드컵의 그림자를 시사저널이 아니라면 그렇게 비중있게 이야기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대학에 들어와서도 시사저널은 변함없는 친구였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갈 때 내 손에는 접어 든 시사저널이 있었다. 어느 때보다 사회갈등이 첨예하게 표면화되었던 참여정부 시대를 시사저널은 균형적인 시각으로 보도해주었다. 그 중에서도 신호철 기자가 사회 문화면에 쓰는 기사들을 즐겨봤는데 특히 교육에 관한 기사들을 좋아했다. 2004년 초 평준화와 관련한 논문 분석 수업을 듣고 돌아오던 중 보았던 신호철 기자의 기사를 잊지 못한다. 그 때는 (이건 뭐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평준화를 겨냥한 경제학자들의 공세가 통계 실증주의를 가장한 이데올로기로서 기승을 부리던 때였다. 거의 모든 언론에서 경제 이념으로 교육을 통제하려던 그 때에, '교육'의 입장에서 합리적으로 평준화 정책을 기술한 신호철 기자의 글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이후로도 고교 등급제나 특목고, 자립형 사립고 설립 등에 대한 문제에서도 신호철 기자의 글은 언제나 '합리적인 교육 기사'에 대한 나의 갈증을 해소해주었다.
논산 훈련소에서도 여자친구가 편지와 함께 보내준 시사저널의 황우석 관련 기사들을 보기도 했고, 배치받고 짬 좀 되자 인터넷 구독 신청을 해서 꾸준히 보았으니, 시사저널과 나의 인연은 족히 7년은 될 것이다. 모든 기사를 꼼꼼하게 읽거나 비평하지는 않고 그저 좋은 읽을거리라는 자세로 시사저널을 대했기 때문에 애독자라는 이름표를 붙이기에 나는 턱없이 모자라다. 그렇지만 나와 시사저널은 적어도 7년 지기 좋은 친구다. 그렇기 때문에 작년부터 착잡하게 바라보던 시사저널 사태가 기어이 직장폐쇄와 기자들의 집단 징계로 치닫는 것을 보는 나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심하게 말하면 친구가 강도의 칼에 찔려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 정도의 충격이다.
문제는 그 강도가 친구 이름표를 달고 나에게 찾아와 친구인 척 어깨동무할 때이다. 빨간 띠를 두른 시사저널의 이름표를 그대로 달고, 정치적으로 편향된 기사와 삼류 소재주의에 빠진 글들을 조악하게 편집해놓은 '주간중앙'이 내가 7년 간 보아 온 '자유만큼 책임을 생각하는 언론' 시사저널이란다. 고종석, 이나미, 신광영, 도종환 필진의 무협지처럼 재미있던 시론이 정진홍, 유석춘과 같이 보수 진영에 깊숙히 몸을 담고 있는 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시사저널을 받아보면 가장 먼저 펼쳐보던 역대 문정우, 서명숙, 이윤삼 편집국장들의 편지가 온 데 간 데 없다. 고재열 기자의 균형있는 정치기사 대신 노무현 때리기에 적극 동참한 메이저 신문의 논조가 여기저기서 묻어난다. 시사저널을 조금이라도 보았던 사람이라면, 이제 절독만으로는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예전의 시사저널을 볼 수 없게 되었다는 안타까움과 애통함만큼 금창태 사장과 삼성 일당에 대한 분노를 절제할 길이 없다.
군대라는 조직에 있는 만큼 나는 권력의 속성에 대해 아주 잘 안다. 권력이 정말 무서운 것은 상대방의 의지에 관계없이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킨다는 표면적인 차원에 있지 않다. 권력은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고 전염된다. 권력에 무릎꿇고 상처받은 자조차 점차로는 권력이 원하는 폭력과 불합리의 질서를 내면화한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권력의 질서에 젖어 들어 권력은 결과적으로 재생산을 거듭한다. 시사저널 기자들을 비롯한 우리 국민들이 이번 자본 권력과의 싸움에 결코 무릎꿇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나는 가끔 한편에서는 대자본의 횡포로 사람들이 쓰러지고 울부짖는데 가판대에는 환각제와 같은 광고의 이미지만 가득한 섬뜩한 장면을 상상한다. 사람들은 가판대를 둘러보고는 세상이 완벽하고 평온한 듯 안심하고 지하철을 타고 '돈' 벌러 간다. 직장에서 아무리 힘들고 부당한 일을 당해도 행복을 사는 지상 가치인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돈을 벌어 자본이 제공하는 '행복'을 산 사람들은 그 시스템 안에서 자본에 유리한 사고와 행동을 하며 살아갈 것이다. 분명히 소리없이 고통당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을 아무도 모르는 사회는 언론을 통제함으로써 가능하다. 어쩌면 지금도 그런 사회일지 모른다.
이번 시사저널 사태가 비단 한 잡지사의 해프닝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완전소중 PD수첩의 공이 컸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금창태 사장의 몰상식에 분노하고 삼성의 언론통제 문제에 대해 주시하고 있다. 시사저널 기자들의 소신있고 이유있는 저항이 자본의 문제를 이렇게 극명하게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은 어떻게 보면 기사 수십 개보다 가치가 있을지 모른다. '자유만큼 책임을 생각하는 언론'을 만들던 사람들이 그 책임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에 대해 나는 무한한 신뢰와 지지를 보낸다. 그리고 나는 7년지기 친구를 되찾기 위해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테니, 시사저널 기자들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자유 언론의 승리를 자축하는 이윤삼 국장의 '편집장의 편지'를 보고싶다. 그리고 내가 아버지가 되었을 때, 내 책상의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자랑스런 시사저널을 놓아 두고 싶다.




덧글
은하 2007/02/10 02:37 # 답글
저도 시사저널에서 특히 신호철 기자의 기사 정말 좋아합니다. 49대 서울대 전 총학생회에서 한총련 탈퇴한다고 기자회견했을 때, 다른 언론들이 '뉴라이트 학생회', '학생운동은 이제 틀렸다' 이런 식으로 써 낼때, 시사저널이 유일하게 제일 먼저 '98년에 실질적으로 탈퇴했다'를 보도했었죠. 고재열 기자 스타일도 그렇고, 사실 시사저널이 딱히 이념적인 걸 전면에 내세운 잡지도 아니고, 오히려 사실추적, 자세한 내막 설명에 강한 잡지였는데, 그게 언론으로서 정말 큰 힘을 발휘하긴 했지만 말이에요. 그래서 금창태 사장의 이념에 편향되어 전문성 상실 어쩌구한 인터뷰 정말 비웃었어요. 자신이야말로 이념을 떠나서 언론인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고;;;보클레어 2007/02/10 16:08 # 답글
시사저널이 사실추적, 자세한 내막 설명에 강한 잡지라는 말씀 정말 동감합니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균형적으로 보였던 것이고 사건을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싶은 독자들의 '정보의 허기'를 가장 충실하게 해소시켜주던 잡지였어요. 그래서 이번 사태가 주는 상실감은 더욱 큽니다.금창태 사장이 PD 수첩을 상대로 고소를 했더군요. 가지가지하는 우리 금사장, 어디까지 가나 두고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