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6월 22일
교권붕괴의 기원과 이해찬의 교원개혁정책
이해찬 세대론 3부 - 교권붕괴의 기원과 이해찬의 교원개혁정책
*
며칠 전 경기도 고양시의 한 고등학교 식당에서 여학생이 교사를 폭행하는 사건 이 일어났다. 폭행이라는 말이 점잖아 보일 정도로 실상은 거의 '밟은' 수준인 듯 하다. 이에 대해 언론은 일제히 교권 붕괴를 성토하고 나섰고 교권 보호를 위한 명문화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데에 입을 모았다. 그런데 사건의 수위에 따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정도가 달라서 그렇지 기사를 검색해보면 한 두 달 간격으로 교사가 폭행당한 사건을 찾을 수 있다. 대중에게 자극이 될 만한 것을 골라 보도하는 언론의 습성을 고려하면 집중적인 조명을 받는 사건에 비해 묻혀지는 사건이 더 많은 셈이다. 이제 웬만한 교사 폭행 사건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란 뜻이다. 대중들도 이제는 '맞는 선생'에 대해 무감각해질 지경에 이르렀다. 실제로 현장에 나가있는 신임교사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 학교마다 학생에게 맞은 선생님들이 꼭 한 명 씩 있다고 한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된 것일까. 그리고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이에 대해 현장의 경력 교사들은 어김없이 이해찬 세대를 거론한다. 다수의 교사들이 1990년대 말, 즉 이해찬 세대부터 학생들이 극도로 말을 안 듣기 시작했고 교사의 권위가 땅으로 곤두박질쳤다고 경험적으로 증언하고 있다. 그들이 이러한 현상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이해찬 전 교육부 장관의 무리한 교원개혁정책이다. 실제로 1999년 9월 학교바로세우기실천연대에서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학교 공동체의 문제 상황에 대한 인식 조사'에서 64%의 교사들이 '정부의 교원개혁정책'을 교권붕괴의 원인으로 꼽았다. 그리고 16%는 체벌금지, 학부모의 학교교육 참여의 제도화와 일방적인 수요자 중심의 정책 추진을 지목했다. 약 80%의 교사들이 정부 정책을 탓하고 있었던 것이다. 교사들의 분노는 1999년 당시 극도로 고조되어 한국교총 주도로 20만명의 교사들이 사상 초유의 장관 퇴진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해찬 자신의 손으로 합법화시켜준 전교조조차 등을 돌릴 정도였다. 많은 사람들은 입시정책에 손해를 보았던 학생과 학부모가 이해찬에게 가장 적대감이 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직접적으로 '개혁 대상'이 되었던 교사 집단이 이해찬 전 장관을 가장 싫어했다.
*
1998년부터 이듬해에 걸친 이해찬식의 무리한 교원 정책이 교권의 급격한 실추를 가져왔다는 것이 교육계 안팎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대표적인 것으로 1)교원정년단축, 2)촌지근절정책, 3)체벌금지, 4)참스승인증제 등이 있다. 이 중 단연 충격파가 컸던 것은 교원정년단축이었다. 정년단축은 다른 정책의 근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정년단축을 합리화하기 위해 교사집단을 '개혁해야 할 대상'으로서 공격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크게는 IMF 외환위기 이후에 사회의 각계에 구조조정 바람이 불어 닥치면서 교원에게도 영향을 미친 배경이 있다. 국가로서는 인건비 등의 경직성 경비가 70%를 차지하는 교육행정의 재정을 절감해야겠다는 목표가 있었을 것이고, 공무원만 철밥통이냐는 사회 안팎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2004년 국무총리 청문회 당시 이해찬은 1998년 교육부 장관 시절 교원평가제와 교원정년단축 두 개를 두고 고민했는데, 자신이 '총대를 메고' 좀더 충격파가 큰 정년단축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증언했다.
문제는 정년단축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이해찬의 '교육 아마추어리즘'이었다. 일반 공무원은 1년을 줄인 데에 반해 교사는 3년을 일시에 줄여버렸다. 이것은 향후 2003년까지 초등교원의 수가 2만 8천명이나 부족한 상황을 야기했다. 결국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중등교원 자격증 소지자를 몇 달 교육시켜서 초등교원 정교사로 발령을 내는 이른바 '중초교사 임용' 사태가 벌어졌다. 교사와 학생, 즉 '사람'이 활동의 핵심인 교육행정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다른 것보다 먼저 사람을 내친 점, 그리고 초등교육과 중등교육의 각 분야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점 등은, 강한 개혁 드라이브를 가진 실권자가 교육에 대한 얕은 이해를 가지고 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보여주었다. 이것은 사실상 '고령자=무능자'로 싸잡아 매도하는 듯한 당국의 태도로도 나타났다. 경제성장률이 높았던 70~80년대에 많은 교사들이 기업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가도 교직에 대한 내적인 만족과 사명감으로 교단을 지킨 원로교사들도 많았다. 이런 원로교사들을 두고 '교육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가 나이가 든 교사를 원하지 않는다'거나 '나이 든 교사는 학생지도에 곤란이 많다'며 정년단축을 합리화하려는 발언은 그들에게 큰 정신적 좌절감을 주었다. 교단에 남은 원로 평교사를 '수석교사제'로 우대하지 않고 퇴물로 보는 당국의 시각이 학생과 학부모를 비롯한 일반인이 교사의 권위를 바라보는 시각에 영향을 주었음은 분명하다.
정년단축의 명분을 얻기 위한 교사 집단 공격은 원로교사에 대한 '망언들'뿐만이 아니었다. 구체적인 액션이 바로 '촌지근절'과 '체벌 금지'였다. 이해찬 전 장관은 좀 무리를 했다. 장관의 직접 명령으로 전국 시도 교육청이 일선 학교에 '우리학교는 촌지를 받지 않습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내걸 것을 지시했다. 각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학부모들에게 같은 내용의 가정통신문을 보낸 것은 물론 학교와 교육청에 '촌지고발창구'가 개설되기도 했다. 촌지 수수 가능성을 없앤다는 이유로 스승의 날 행사를 취소했던 처음 해가 1999년이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졸지에 교사들은 전체가 촌지를 받아먹는 집단으로 매도되었고 이것이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다. 이 과정에서 촌지를 받지 않는 대다수의 교사들도 학생들 앞에서 자괴감을 느껴야 했다. 이를 지켜보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어떤 생각을 했을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체벌 금지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체벌 금지 관련 지침은 1997년 김영삼 정부 시절 교육관련 법률 정비할 때 이미 마련된 것이었다. 이 때는 학생 인권을 존중하는 훈육의 큰 틀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1998년 이해찬 장관이 취임하고 장관의 구체적인 시행 권고에 따라 서울시 교육청이 '체벌없는 학교 만들기' 운동을 추진했다. 그리고 이것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이 때는 각급 학교에 공문서를 시달하여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에만' '학교장의 허가를 얻어' 체벌하도록 지시했다. 법률이 아닌 행정 명령일 뿐이었지만 당국이 취한 사실상의 '체벌 금지법'이었다. 이러한 지침들은 각 지방자치단체로 확산되었다. 교사의 자유 재량권을 행정 명령으로 금지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교사의 감정적 체벌 문제를 필요 이상으로 부각시켰기 때문이었다. 학생이 체벌하는 교사를 경찰에 신고하는 일이 생겨난 것이 바로 이 때다. 교사가 체벌하는 것은 그들 생각으로 '법'을 어기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체벌 금지 명령은 현장에서 학습자 훈육과 교원의 자율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자 이듬해에 슬그머니 철회가 되었다. 그러나 골이 깊어진 교사 학생 간의 불신은 생각보다 큰 것이었다.
*
이처럼 이해찬 전 교육부 장관이 취한 일련의 교원 정책들이 교권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친 점을 부정할 수 없다. 현장의 경력 교사들이 이해찬 세대를 교권 붕괴의 '기원'으로 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 배경은 IMF 이후 불어닥친 사회 전반의 구조조정 바람에 교원이 포함된 정년단축문제에 있었다. 그리고 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교육 당국이 필요 이상의 액션으로 원료교사, 촌지, 체벌 등 치부를 들추며 교사 집단을 공격한 것이 본질이었다. 이해찬 전 장관의 교육 정책이 욕을 먹어야할 것이 있다면 사실 학력 저하의 문제보다 교권 붕괴 문제가 더 크다.
그러나 주의해야할 것이 있다. 그럼 이해찬 장관 이전에는 교사의 권위가 바람직한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었는가? 교권 붕괴란 이해찬 전 장관이 취한 일련의 교원개혁정책이 결정적 변수였는가? 대답은 물론 'No'이다. 교권 붕괴, 포괄적으로 교실붕괴란 일시적 현상이 아니고 우리 나라만의 현상도 아니다. 미국은 1970년대, 일본은 1980년대부터 겪어 왔던 문제다. 산업화가 구조적으로 고도화되고 국민공교육제도가 정착된 나라일수록 교권붕괴 현상은 심각하다. 우리 학교는 1990년대 초부터 이미 교권붕괴의 씨앗을 배태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당시 군사정권이 물러난 이후 사회전반에 걸쳐 민주주의 발전과 함께 권위체계가 무너져갔던 까닭도 있었을 것이고, 정보화와 사교육의 발달로 교사의 지식에 대한 권위가 학원이나 인터넷으로 분산된 까닭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자본 위주의 가치 체계에 사회가 편입되어 갈수록 교원의 상대적으로 낮은 사회경제적 지위가 그들의 권위 약화에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다. 교권붕괴는 이해찬 장관 시절 이전부터 좀더 큰 사회문화적 흐름에 따라 진행되고 있었다. 이해찬 전 장관은 이 흐름을 가속화시킨 정촉매였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러한 대세론에 의해 이해찬 전 장관이 취한 일련의 무리한 교원개혁정책이 면죄부를 받는 것은 물론 안 된다. 그러나 그의 정책이 교권붕괴의 기원 및 원흉으로 지목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최근의 교권회복 움직임에 관한 것이다. 그동안 교권 추락의 원인으로 지적되었던 것들은 한결같이 교사 밖에서 발생한 제도적이고 외생적인 것이라는 문제의식에 터해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이해찬의 교원개혁정책을 탓하는 교사들의 목소리였다. 사회, 가정, 그리고 학생들이 변해서 교권이 서기 어렵고 정부에서는 교권을 세워줄 생각은 하지 않고 개혁 대상으로 몰아부쳐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는 생각이다. 이런 인식이라면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 즉 교권회복의 구체적인 실천도 교사 외적인 변혁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외적인 제도 개선만으로 교권이 다시 확립된다면 그처럼 다행스러운 일은 없겠다. 그러나 교권을 둘러싼 원인과 결과의 연결고리는 그렇게 간단해보이지 않으며 보다 근원적이고 교사와 학교 내부에 존재하는 내생적인 원인의 역할도 적지 않다. 교사를 성급하게 개혁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처럼 외적인 제도를 바꾸어서 교권을 회복할 수 있다는 생각 또한 성급한 착각이다. 제도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교권을 '보호'하는 일뿐이지 교권을 '회복'하는 일은 될 수 없다고 본다. 결국 교권 문제는 교사 자신의 내적인 부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1966년 유네스코의 '교원의 지위에 관한 권고'에서 교직을 전문직으로 간주하여야 한다고 명문화한 이후, 교직은 전문직이 되어야 한다는 의식이 국제적으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러한 권고는 교원이 전문직으로 대우받고 있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전문직의 요건으로는 전문성, 윤리성, 자율성이 있다. 일반인이 가지고 있지 않은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지식체계와 기능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직종 내부적인 결사에서 스스로 확립되고 승인된 윤리강령에 의거하여 활동해야 하며, 행동에 대한 고도의 자기 통제력과 광범위한 자유재량과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해찬 전 장관의 교원 개혁 정책을 비롯한 외생적인 요인들이 전문직으로서의 교사의 권위를 제한하는 것은 사실상 '자율성' 한 가지 요소에 관한 것이었다. 행정적으로 이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일은 교권 확립에 매우 중요한 한 축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를 주장하는 교사들의 견해가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교사가 우리 사회에서 전문직으로서의 권위를 인정받으려면 나머지 두 가지 요소, 전문성과 윤리성을 집단 내부적으로 쇄신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내부적인 장학 활동을 통해 교수 행위에 관한 전문성을 높이고 내부적으로 촌지와 체벌 문제를 자기 정화할 수 있는 직업윤리장치를 갖추어 나가야 한다. 이 전문성과 윤리성 확립을 통한 교권 신장의 핵심단체는 역시 한국교총과 전교조를 비롯한 교원단체라고 믿는다. 교원단체들이 외적으로 정부에 대해 교원의 자율성에 대해 투쟁하는 만큼, 교사 집단 내적으로도 전문성, 특히 윤리성을 위한 자기 정화 장치를 확립하는 일에도 힘을 써주었으면 한다.
*
며칠 전 경기도 고양시의 한 고등학교 식당에서 여학생이 교사를 폭행하는 사건 이 일어났다. 폭행이라는 말이 점잖아 보일 정도로 실상은 거의 '밟은' 수준인 듯 하다. 이에 대해 언론은 일제히 교권 붕괴를 성토하고 나섰고 교권 보호를 위한 명문화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데에 입을 모았다. 그런데 사건의 수위에 따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정도가 달라서 그렇지 기사를 검색해보면 한 두 달 간격으로 교사가 폭행당한 사건을 찾을 수 있다. 대중에게 자극이 될 만한 것을 골라 보도하는 언론의 습성을 고려하면 집중적인 조명을 받는 사건에 비해 묻혀지는 사건이 더 많은 셈이다. 이제 웬만한 교사 폭행 사건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란 뜻이다. 대중들도 이제는 '맞는 선생'에 대해 무감각해질 지경에 이르렀다. 실제로 현장에 나가있는 신임교사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 학교마다 학생에게 맞은 선생님들이 꼭 한 명 씩 있다고 한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된 것일까. 그리고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이에 대해 현장의 경력 교사들은 어김없이 이해찬 세대를 거론한다. 다수의 교사들이 1990년대 말, 즉 이해찬 세대부터 학생들이 극도로 말을 안 듣기 시작했고 교사의 권위가 땅으로 곤두박질쳤다고 경험적으로 증언하고 있다. 그들이 이러한 현상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이해찬 전 교육부 장관의 무리한 교원개혁정책이다. 실제로 1999년 9월 학교바로세우기실천연대에서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학교 공동체의 문제 상황에 대한 인식 조사'에서 64%의 교사들이 '정부의 교원개혁정책'을 교권붕괴의 원인으로 꼽았다. 그리고 16%는 체벌금지, 학부모의 학교교육 참여의 제도화와 일방적인 수요자 중심의 정책 추진을 지목했다. 약 80%의 교사들이 정부 정책을 탓하고 있었던 것이다. 교사들의 분노는 1999년 당시 극도로 고조되어 한국교총 주도로 20만명의 교사들이 사상 초유의 장관 퇴진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해찬 자신의 손으로 합법화시켜준 전교조조차 등을 돌릴 정도였다. 많은 사람들은 입시정책에 손해를 보았던 학생과 학부모가 이해찬에게 가장 적대감이 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직접적으로 '개혁 대상'이 되었던 교사 집단이 이해찬 전 장관을 가장 싫어했다.
*
1998년부터 이듬해에 걸친 이해찬식의 무리한 교원 정책이 교권의 급격한 실추를 가져왔다는 것이 교육계 안팎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대표적인 것으로 1)교원정년단축, 2)촌지근절정책, 3)체벌금지, 4)참스승인증제 등이 있다. 이 중 단연 충격파가 컸던 것은 교원정년단축이었다. 정년단축은 다른 정책의 근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정년단축을 합리화하기 위해 교사집단을 '개혁해야 할 대상'으로서 공격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크게는 IMF 외환위기 이후에 사회의 각계에 구조조정 바람이 불어 닥치면서 교원에게도 영향을 미친 배경이 있다. 국가로서는 인건비 등의 경직성 경비가 70%를 차지하는 교육행정의 재정을 절감해야겠다는 목표가 있었을 것이고, 공무원만 철밥통이냐는 사회 안팎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2004년 국무총리 청문회 당시 이해찬은 1998년 교육부 장관 시절 교원평가제와 교원정년단축 두 개를 두고 고민했는데, 자신이 '총대를 메고' 좀더 충격파가 큰 정년단축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증언했다.
문제는 정년단축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이해찬의 '교육 아마추어리즘'이었다. 일반 공무원은 1년을 줄인 데에 반해 교사는 3년을 일시에 줄여버렸다. 이것은 향후 2003년까지 초등교원의 수가 2만 8천명이나 부족한 상황을 야기했다. 결국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중등교원 자격증 소지자를 몇 달 교육시켜서 초등교원 정교사로 발령을 내는 이른바 '중초교사 임용' 사태가 벌어졌다. 교사와 학생, 즉 '사람'이 활동의 핵심인 교육행정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다른 것보다 먼저 사람을 내친 점, 그리고 초등교육과 중등교육의 각 분야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점 등은, 강한 개혁 드라이브를 가진 실권자가 교육에 대한 얕은 이해를 가지고 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보여주었다. 이것은 사실상 '고령자=무능자'로 싸잡아 매도하는 듯한 당국의 태도로도 나타났다. 경제성장률이 높았던 70~80년대에 많은 교사들이 기업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가도 교직에 대한 내적인 만족과 사명감으로 교단을 지킨 원로교사들도 많았다. 이런 원로교사들을 두고 '교육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가 나이가 든 교사를 원하지 않는다'거나 '나이 든 교사는 학생지도에 곤란이 많다'며 정년단축을 합리화하려는 발언은 그들에게 큰 정신적 좌절감을 주었다. 교단에 남은 원로 평교사를 '수석교사제'로 우대하지 않고 퇴물로 보는 당국의 시각이 학생과 학부모를 비롯한 일반인이 교사의 권위를 바라보는 시각에 영향을 주었음은 분명하다.
정년단축의 명분을 얻기 위한 교사 집단 공격은 원로교사에 대한 '망언들'뿐만이 아니었다. 구체적인 액션이 바로 '촌지근절'과 '체벌 금지'였다. 이해찬 전 장관은 좀 무리를 했다. 장관의 직접 명령으로 전국 시도 교육청이 일선 학교에 '우리학교는 촌지를 받지 않습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내걸 것을 지시했다. 각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학부모들에게 같은 내용의 가정통신문을 보낸 것은 물론 학교와 교육청에 '촌지고발창구'가 개설되기도 했다. 촌지 수수 가능성을 없앤다는 이유로 스승의 날 행사를 취소했던 처음 해가 1999년이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졸지에 교사들은 전체가 촌지를 받아먹는 집단으로 매도되었고 이것이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다. 이 과정에서 촌지를 받지 않는 대다수의 교사들도 학생들 앞에서 자괴감을 느껴야 했다. 이를 지켜보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어떤 생각을 했을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체벌 금지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체벌 금지 관련 지침은 1997년 김영삼 정부 시절 교육관련 법률 정비할 때 이미 마련된 것이었다. 이 때는 학생 인권을 존중하는 훈육의 큰 틀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1998년 이해찬 장관이 취임하고 장관의 구체적인 시행 권고에 따라 서울시 교육청이 '체벌없는 학교 만들기' 운동을 추진했다. 그리고 이것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이 때는 각급 학교에 공문서를 시달하여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에만' '학교장의 허가를 얻어' 체벌하도록 지시했다. 법률이 아닌 행정 명령일 뿐이었지만 당국이 취한 사실상의 '체벌 금지법'이었다. 이러한 지침들은 각 지방자치단체로 확산되었다. 교사의 자유 재량권을 행정 명령으로 금지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교사의 감정적 체벌 문제를 필요 이상으로 부각시켰기 때문이었다. 학생이 체벌하는 교사를 경찰에 신고하는 일이 생겨난 것이 바로 이 때다. 교사가 체벌하는 것은 그들 생각으로 '법'을 어기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체벌 금지 명령은 현장에서 학습자 훈육과 교원의 자율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자 이듬해에 슬그머니 철회가 되었다. 그러나 골이 깊어진 교사 학생 간의 불신은 생각보다 큰 것이었다.
*
이처럼 이해찬 전 교육부 장관이 취한 일련의 교원 정책들이 교권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친 점을 부정할 수 없다. 현장의 경력 교사들이 이해찬 세대를 교권 붕괴의 '기원'으로 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 배경은 IMF 이후 불어닥친 사회 전반의 구조조정 바람에 교원이 포함된 정년단축문제에 있었다. 그리고 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교육 당국이 필요 이상의 액션으로 원료교사, 촌지, 체벌 등 치부를 들추며 교사 집단을 공격한 것이 본질이었다. 이해찬 전 장관의 교육 정책이 욕을 먹어야할 것이 있다면 사실 학력 저하의 문제보다 교권 붕괴 문제가 더 크다.
그러나 주의해야할 것이 있다. 그럼 이해찬 장관 이전에는 교사의 권위가 바람직한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었는가? 교권 붕괴란 이해찬 전 장관이 취한 일련의 교원개혁정책이 결정적 변수였는가? 대답은 물론 'No'이다. 교권 붕괴, 포괄적으로 교실붕괴란 일시적 현상이 아니고 우리 나라만의 현상도 아니다. 미국은 1970년대, 일본은 1980년대부터 겪어 왔던 문제다. 산업화가 구조적으로 고도화되고 국민공교육제도가 정착된 나라일수록 교권붕괴 현상은 심각하다. 우리 학교는 1990년대 초부터 이미 교권붕괴의 씨앗을 배태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당시 군사정권이 물러난 이후 사회전반에 걸쳐 민주주의 발전과 함께 권위체계가 무너져갔던 까닭도 있었을 것이고, 정보화와 사교육의 발달로 교사의 지식에 대한 권위가 학원이나 인터넷으로 분산된 까닭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자본 위주의 가치 체계에 사회가 편입되어 갈수록 교원의 상대적으로 낮은 사회경제적 지위가 그들의 권위 약화에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다. 교권붕괴는 이해찬 장관 시절 이전부터 좀더 큰 사회문화적 흐름에 따라 진행되고 있었다. 이해찬 전 장관은 이 흐름을 가속화시킨 정촉매였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러한 대세론에 의해 이해찬 전 장관이 취한 일련의 무리한 교원개혁정책이 면죄부를 받는 것은 물론 안 된다. 그러나 그의 정책이 교권붕괴의 기원 및 원흉으로 지목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최근의 교권회복 움직임에 관한 것이다. 그동안 교권 추락의 원인으로 지적되었던 것들은 한결같이 교사 밖에서 발생한 제도적이고 외생적인 것이라는 문제의식에 터해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이해찬의 교원개혁정책을 탓하는 교사들의 목소리였다. 사회, 가정, 그리고 학생들이 변해서 교권이 서기 어렵고 정부에서는 교권을 세워줄 생각은 하지 않고 개혁 대상으로 몰아부쳐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는 생각이다. 이런 인식이라면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 즉 교권회복의 구체적인 실천도 교사 외적인 변혁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외적인 제도 개선만으로 교권이 다시 확립된다면 그처럼 다행스러운 일은 없겠다. 그러나 교권을 둘러싼 원인과 결과의 연결고리는 그렇게 간단해보이지 않으며 보다 근원적이고 교사와 학교 내부에 존재하는 내생적인 원인의 역할도 적지 않다. 교사를 성급하게 개혁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처럼 외적인 제도를 바꾸어서 교권을 회복할 수 있다는 생각 또한 성급한 착각이다. 제도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교권을 '보호'하는 일뿐이지 교권을 '회복'하는 일은 될 수 없다고 본다. 결국 교권 문제는 교사 자신의 내적인 부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1966년 유네스코의 '교원의 지위에 관한 권고'에서 교직을 전문직으로 간주하여야 한다고 명문화한 이후, 교직은 전문직이 되어야 한다는 의식이 국제적으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러한 권고는 교원이 전문직으로 대우받고 있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전문직의 요건으로는 전문성, 윤리성, 자율성이 있다. 일반인이 가지고 있지 않은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지식체계와 기능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직종 내부적인 결사에서 스스로 확립되고 승인된 윤리강령에 의거하여 활동해야 하며, 행동에 대한 고도의 자기 통제력과 광범위한 자유재량과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해찬 전 장관의 교원 개혁 정책을 비롯한 외생적인 요인들이 전문직으로서의 교사의 권위를 제한하는 것은 사실상 '자율성' 한 가지 요소에 관한 것이었다. 행정적으로 이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일은 교권 확립에 매우 중요한 한 축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를 주장하는 교사들의 견해가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교사가 우리 사회에서 전문직으로서의 권위를 인정받으려면 나머지 두 가지 요소, 전문성과 윤리성을 집단 내부적으로 쇄신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내부적인 장학 활동을 통해 교수 행위에 관한 전문성을 높이고 내부적으로 촌지와 체벌 문제를 자기 정화할 수 있는 직업윤리장치를 갖추어 나가야 한다. 이 전문성과 윤리성 확립을 통한 교권 신장의 핵심단체는 역시 한국교총과 전교조를 비롯한 교원단체라고 믿는다. 교원단체들이 외적으로 정부에 대해 교원의 자율성에 대해 투쟁하는 만큼, 교사 집단 내적으로도 전문성, 특히 윤리성을 위한 자기 정화 장치를 확립하는 일에도 힘을 써주었으면 한다.
# by | 2007/06/22 13:18 | 교육-에세이 | 트랙백 | 덧글(18)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교육부분에서는 제가 많이 취약한데 여러모로 많이 배우고 갑니다.
마지막의 윤리성과 전문성에 관한 내용에 깊이 공감하고 갑니다.
제도적인 것도 그렇지만, 내적인 부분도 개선의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한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학생의 폭력성에 관한 것입니다. 미국내 초등학교에서 한국 학생들의 폭력성이 두드러진다는 얘기가 있더라구요. 사교육 등으로 "유희"하고 "상상"할 시간을 뺏긴 청소년이 폭력적 성향이 높아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지 않을까요? 청소년의 건강한 무의식을 위해서라도, 학원 영업 시간을 제한하는 법률을 만드는 것은 교육학적 측면에서 어떨까요? 자유시간의 교육적 효과에 대해서는 충분히 연구해 볼 만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조금은 막연한 결론이 아닌가 싶네요.
당위와 실천과의 거리 차이 때문인지, 보클레어님의 당위는 허공에서 흩어지는 듯한 기분이 드네요. 내부적인 장학활동을 통해서.. 자기 정화 장치를 확립해서.. 등은, 이상적인 공허함이..
그렇다고 이도 저도 다 쓸모없다는 회의론자는 아닌데..
나름, 학원의 영업시간 제한이 사교육비 부담도 경감하고, 공교육도 활성화하고,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했는데요...
마지막 이야기는 인상적이군요. 교육에 열의가 없는 교사가 오히려 더 권위를 세우는 경우가 있다는 것은 또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인 듯 합니다.
oldman / 별 말씀을요. 배우는 것은 항상 oldman님에 대한 저의 몫입니다. 성의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공개2 / 하이에나 말인가요?;; 하이에나는 모계 지배 사회래요. 암컷에게 남성 호르몬이 너무 많이 분비되어서 훨씬 공격적이랍니다. 심지어는 호르몬 때문에 암컷이 가짜 음경이 있어서 육안으로 암수 구별이 안 된다네요. 당연히 수컷 하이에나는 찌그러져 있어야죠. 저를 비유하자면 수컷 하이에나겠군요.
francisco / 맞아요. 이거 교사들이 8년 전의 장관퇴진운동처럼 대선 출정한 이해찬씨 낙선 운동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교사에 대한 애정이 있습니다.진심으로 그들이 전문직으로 대우받길 원하죠. 윤리성과 전문성에 관한 교사의 자기 쇄신을 공감하시는 님께서도 그런 애정을 가지고 계신 거겠지요. (그런데 francisco님 블로그 Add Link는 도대체 어디 있는건지;;)
라벤더 / 행정 잡무 때문에 가뜩이나 교재 연구하고 동료 장학 활동할 시간이 적은데, 교사들끼리도 서로 스트레스 주는 건 정말 몹쓸 짓이죠. 성의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maybe / 저도 정년 단축 자체를 반대하는 편은 아닙니다만, 3년을 한꺼번에 줄이는, 너무나도 '이해찬스러운' 개혁 방식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었다고 봅니다. 상기했다시피 당장 교원 부족분을 메울 재정도 대안도 없었으니까요. 게다가 퇴직 교사들의 퇴직 수당때문에 원하던 재정 절감 효과도 미미했었지요. 정년단축하겠다고 mean하게 교사 집단 공격하며 무리를 했는데 정작 그 효과는 적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평이더군요.
미국 내 한국 학생의 폭력성에 관한 것은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군요. 조승희 사건에 대한 원인 진단이 다양했듯이 이에 대해서도 다양한 시각이 있겠지요. 그 중에서도 자유시간과 폭력성에 관한 님의 시각은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말하자면 청소년의 학업 스트레스 변수와 폭력성 간의 관계일텐데, 연구 논문이 분명히 있을 것 같습니다. 한 번 검색해 보아야겠어요. 그리고 학원 심야 수업 제한은 올해 3월에 서울시 교육청에서, 4월에 경기도 교육청에서 시행했었죠. 목적은 사실 학생들의 학업 스트레스를 줄여준다는 것이라기보다 사교육비 경감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행 일주일도 안되어서 제한 시간을 밤 10시에 11시로 연장하는 등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죠. 70%의 학생과 학부모들이 이에 반대한다고 나왔지만 체감적으로는 그보다 더 반대와 조소가 심했습니다. 입시 경쟁 체제 하에서 아무리 학생의 균형적이고 전인적인 발달을 부르짖어도 무위로 돌아갈 가능성도 고려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heysu / 부족한 제 글을 성의있게 봐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저 역시 포스팅을 날림으로 할 수는 없겠더군요. 이런 성의의 선순환이 제 블로그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면 그야말로 저에겐 기쁜 일일 겁니다. 열심히 봐주시는 heysu님께 감사드려요.
충분한 설명이 없는 규범적인 주장은 공허하죠. heysu님의 지적은 옳습니다. 그런데 제가 교사의 전문성, 윤리성 신장에 대해 부연 설명하지 않고 당위 서술로만 그친 것은, 교원의 윤리성과 특히 전문성에 대해 말씀드리려면 글이 길어지고 초점이 흐려질 것 같아서였습니다. 교사 연수 제도, 교원 양성 제도, 동료 장학과 선택적 장학의 현황과 한계, 교원 단체의 내규 시스템 등에 대해서 덧붙이자면, 그렇지 않아도 초점없이 무지막지하게 길기만 한 글이 더 길어질 것 같았거든요;; 이 글의 의도는 아무래도 이해찬의 교원개혁정책이 교권 붕괴에 미친 영향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확인하면서 동시에, 교권 붕괴 현상의 원인을 그 정책에만 귀인하는 교원들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습니다. 이러한 줄기에서, 대안에 대해서는 방향성만을 제시하고 글을 맺다보니 그런 공허한 뒷맛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나중에 한 번 '교권 신장을 위한 교사 내부의 전문성, 윤리성 신장 방안'에 대해서도 열심히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지적 감사드려요. 나중에 이 교사 내부의 전문성과 윤리성에 대해서 heysu님의 고견 또한 듣고 싶습니다.
비공개3 / 맞아요. 세상 일은 모르는거니까요. 신중한 님의 요청에 응했습니다.
저도 학원 영업 시간 제한을 통해 사교육비와 아이들의 학업 스트레스를 줄여주자는 긍정적인 효과 자체를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제도가 현실과 어떤 화학반응을 일으키는가도 분명히 계산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행정규칙상으로도 무리가 없고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어차피 제도는 사람들의 욕망을 관리하는 것이니까요.
개인적으론 민주화 과정이나 평민당 의원 시절부터의 이해찬 씨의 활동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 다른 이야기지만 이해찬 씨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덧씌우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해찬 씨는 기존 사회가 극한의 권위주의 사회였고, 교육현장 또한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 거대한 구태들을 벗겨보려는 참신한 시도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개혁의 방향이 정당하다고 해서 그 구체적 실천이 항상 합리화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말입니다. 분명 무리하고도 극단적인 측면이 있었습니다.
참 아쉽습니다. 이해찬 씨 나름의 교육에 대한 이상과 방향이 좀 더 프로페셔널하게 다듬어지고 다듬어졌다면, 그리고 몇 세대에 유지시켰다면 또 어떤 방향으로 우리나라 교육이 흘러갔을지, 궁금하네요.
그러나 교육 행정의 관점으로 볼 때 이해찬씨의 시도는 전혀 참신하지도 개혁적이지도 않았다고 봅니다. 오히려 아마추어리즘을 여실히 보여줬죠. 이를테면 이해찬씨가 1998년에 마련한 교육발전5개년계획 시안의 총 기획예산이 113조였어요. 그런데 당시 교육부 1년 예산이 17조였죠. 5년 간 6조씩 예산 증액을 한다고 해도 무리였습니다. 교원성과급 정책 하나만 시행하려고 해도 전교조 교사들이 성과급 모아서 불태우고 하는 등, 정책 시행 및 유지 비용까지 감안해야죠. 이런 거 생각 안하고 오직 소신, 개혁 드라이브만 내건 이해찬씨는 행정관료로서, 그리고 교육부 수장으로서는 아마추어 중의 아마추어였던 겁니다. 실제로 교육부 관료들의 노련함에 당시 이해찬 전 장관이 놀아났다는 시각도 있어요. 이해찬 전 장관은 교육부의 유능한 관료들을 든든하게 여기고 또 믿었지만, 관료들은 사립학교법개정안을 제출한 장관의 입법 의지를 거의 묵살하다시피 했었습니다.
아니, 교권붕괴를 얘기하는 데 무슨 교사의 권력 운운하며 뒷북을 치십니까(제 취미예요..^^;;)라고 묻는다면 쑥쓰럽겠지만, 전 교사가 불가침의 존재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이해찬의 교육개혁중에 교사정년 단축, 촌지, 체벌금지는 그 전의 상황을 보면 언제든, 누구든 했어야 하는 개혁이라고 봐요. 그것이 교권붕괴를 가져왔다는 것은, 그 전의 교권이 무엇으로 이루워져 있었는지를 보여주지 않나요. 어른이라고 다 어른이 아니고, 교사라고 모두 교사의 자격을 가지고 있다고 보진 않아요.
교권붕괴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지만, 실제 학교에서 대부분의 선생님과 학생들은 어렵고 답답한 환경에서도 잘 참고, 많이 노력하면서 지내지 않나요. 써놓고 보니 문제가 되는 소수때문에 전체의 교사와 학생들을 매도한 것 같은 기분도 듭니다. 묵묵히 일하시는 좋은 선생님들, 조용히 따르고 제 할 일 열심히 하는 좋은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교권이나 교육개혁이라면서 초,중,고등학생이나 교사를 달달 볶는 것은 그만했으면 좋겠어요. 개혁의 우선순위는 대학입니다. 전문성과 윤리성, 자율성의 자와 칼을 들이대야 하는 곳은 대학교수와 재단, 행정당국, 대학생들이예요. 먼저 두들겨 패야 하는 사람들은 정부관료보다 수술해야 할 곳에 칼을 들이대지 못하게 하는 정치인쪽이 아닐까요.
앗. 제 글도 아닌데, 무지 길어졌군요. 죄송합니다. ^^;;;
reve님이 정확히 지적해주신 정년문제는 사실 저도 좀더 알아보고 싶은 부분입니다. 초중등교원 62세, 대학교수 65세로 우리 사회 직종 중에서 가장 정년이 늦죠. 이 배경이 과연 어디에 있을까 열심히 찾아보겠습니다. 수급 문제인지 아니면 reve님 말씀대로 교원집단의 정치적 영향력, 필요 이상의 권위가 존속되고 있는 것인지 말입니다. 저의 당장의 가설은 병역 자원의 수에 따라 병역 기간을 조정할 수 있듯이, 신임교원수급의 양과 그것을 소화할 수 있는 교육 행재정의 능력에 따라 정년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해찬은 교육개혁의 이름 아래 고등교육 개혁을 훨씬 다양하게 전개했죠. 1998년에 중등교육 개혁에 치중했다면 1999년에는 고등교육 개혁을 중점 추진했었습니다. 교육발전5개년계획 시안과 BK21사업이 그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4부에서 다루려고 했던 내용인데 어떻게 아시고 리퀘스트를 해주셨네요. 조만간 이해찬과 고등교육 개혁 정책에 대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성의있는 덧글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많이 생각할거리를 얻고 많이 배웠습니다^^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잘해주셔서 뭐 책한 권 본 느김입니다.
그냥 갈 수 없어 감사하다고 한 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