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교육 격세지감

   며칠 전 대통령 자문 교육혁신위가 내 놓은 '미래교육비전과 전략'을 보면서 처음 든 생각은 바로 '격세지감'이었다. 세상이 언제 이렇게 변했던가. 학년군제, 무학년제, 교사 자격 갱신제 등 획기적인 방안들이 많이 나왔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 쇼킹한 것은 홈스쿨링의 학력 인정에 관한 것이다. 2001년 대안학교의 대표격인 간디학교가 미인가 중학교 운영 등의 이유로 경남 교육청에 의해 고발되었던 것이 불과 6년 전의 일이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홈스쿨링, 자유학교, 생태학교 등의 대안교육이 그나마 본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이 1999년의 일이다. 채 10년도 되지 않아 가장 非제도적인 형태의 대안교육인 홈스쿨링을 정부에서 향후 인정하겠다고 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혹자는 이 혁신안이 '실효성 없다' '현실과 동떨어졌다'라고 하며 애써 무시하려고 하지만, 생각해보자, 1995년 5.31 교육개혁안이 나왔을 때도 지금과 똑같은 반응이었다. 지난 12년동안 우리 교육 현장의 전체 지형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해보면 현 정부의 혁신안도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다는 얘기다.

   대안 교육이 처음 기틀을 잡은 것은 1990년대 중반의 일이다. 70~80년대에도 야학이나 달동네 공부방과 같은 민중교육운동이 일어나기는 했으나 이것은 대안교육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성격이었다. 그 당시의 민중교육운동은 학교의 양적 팽창에서 소외된 집단에게 학교 교육을 대신 제공해 준다는 기능이 강했다. 90년대 대안교육이 근대 학교 교육 체제를 '부정'하는 것이었다면, 70~80년대의 민중교육운동은 사실상 학교 교육에 대한 '갈망'에 가까웠다. 그러던 것이 90년대 초 조한혜정 교수의 '또 하나의 문화' 캠프나 자유학교 물꼬와 같은 선구적인 탈학교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산발적으로 일어나던 대안 교육의 지류가 하나의 물결로 합쳐진 것은 1995년 2월 '새로운 학교를 만드는 모임'에서다. 1995년이 어떤 해인가. 향후 한국 교육의 큰 밑그림을 그린 '5.31교육개혁안'이 나온 해이다. 당시 한국 사회가 공유하고 있던 '우리 교육 이대로는 안된다'라는 문제의식을, 위에서는 5.31 교육개혁안이라는 신자유주의적 구상으로, 아래에서는 근대 학교 교육 체제를 전면적으로 극복하려는 대안교육운동으로 풀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부에 의해 대안교육이 다소 왜곡되고 제약된 측면이 있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1996년 12월에 발표한 '학교 중도탈락자 예방 대책'이었다. 당시 한 해 7만명에서 8만명에 이르는 학교 중도 탈락자들이 양산되고 있었고 정부는 이 문제를 '대안학교'라는 수용소를 통해 정책적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전국 여섯 개 권역 당 한 개씩 대안학교를 세워 이들을 교정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이 안은 대안교육운동 진영과 공교육 진영 양쪽에서 뭇매를 맞았다. 한 쪽에서는 '대안교육을 부적응자를 위한 교육으로 왜곡하지 마라'고 했고 한쪽에서는 '그들이 대안이면 도대체 우리는 뭐란 말이냐'며 반대했다. 결국 명칭을 '특성화학교'로 바꾸고 대상도 학교 부적응자 뿐만 아니라 자연 친화적인 인성교육까지 확대했지만, 세간에 널리 퍼진 '대안학교=문제아 수용소'라는 부정적인 인식은 쉽게 희석되지 않았다. 덕분에 학교 예정 부지 주민들의 반대가 심해 충남 부여의 반딧불고같은 경우는 추진 3년만인 2001년에야 '미인가' 중학교로 문을 열 수 있었다. 대안학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무려 5년 이상이나 지속되었다는 방증이다.

   1990년대 후반 이제 막 새로운 교육을 꿈꾸며 새로운 학교를 꾸려가던 많은 학부모와 교사들은 미인가 학교, 학력 인정, 국가 교육과정 제도와 검인정 교과서 제도 등의 제도적인 걸림돌 때문에 숱하게 좌절했었다. 대표적인 것이 위에서 말한 2001년의 산청 간디학교와 경남 교육청의 충돌이다. 결국 간디학교는 당시 2001년 말에 중학교 과정을 자진 해산하고 평생교육시설로 전환되고 말았다. 이런 세간의 부정적인 인식과 제도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간디학교는 4개의 분교로 증설되어 현재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 사회 저변에 공교육에 대한 '대안에의 열망'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왔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아마 이번 교육 혁신위의 '미래교육비전' 안에도 바로 이런 거대한 deschooling의 조류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홈스쿨링이라면 대안학교보다 훨씬 비형식적인 교육 형태인데 이것까지 인정하겠다니, 교육부는 도대체 얼마나 대인배가 되어버린 것인가. 2001년 당시 경남 교육청 앞에서 시위하던 간디학교 학생들이나, 학교 부지를 찾아 쫓겨다니던 반딧불고 설립자들은 격세지감을 넘어 조금 억울한 마음이 들 법도 하겠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시대의 조류가 그들의 땀과 눈물을 배신하지는 않은 것 같다는 점이다.

by 보클레어 | 2007/08/18 20:06 | 교육-에세이 | 트랙백(1) | 핑백(1)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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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호모 루덴스 at 2007/08/19 15:06

제목 : 비젼 2030 교육혁신위
내 몸뚱아리를 굴려서 할 수 있는 일을 일단 해 본 다음에 뭔가 이루어지면 한숨 돌리면서 그간의 사정 백서 비슷하게 정리한 다음에 세상 돌아가는 일이나 남이 사는 일에 이러쿵저러쿵 얘기를 풀어볼까 했는데, 이 기사는 그냥 덮어두고 넘어갈 일이 아닌 듯 하다. 술 취한 상태라 깨고 나면 다시 수정할 일이 있을 지도 모르지만 짧게 메모라도 해두어야지 싶다. 내일은 또 노느라 바쁠 테니까···. 그 전에 말해 둘 것이 있다. 방학을 지역 사정에 맞......more

Linked at 누구의 것도 아닌 집—푸른 문.. at 2007/08/19 10:20

... .   내가 나에게 지양하기를 권함: “게임, 소모적인 영화, 음주, 인터넷, 잦은 이동, 컴퓨터, 프랜즈” 후회의 여지가 많이 숨어있다.   대안교육 격세지감: 한국 대안교육 변천사 요약본. 그리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안상수의 예수상: “역시 그림은 글보다 고고하다. 글은 한방에 구상해도 쓰는 데 ... more

Commented by Elliott at 2007/08/18 20:58
저도 대안교육에 관한 정부의 발표를 듣고 상당히 놀랐습니다. 뭐랄까 갑자기 정부가 래디컬해진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오히려 제도교육만으로 이른바 교육주체로서의 청소년들을 모두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저는 늦었지만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조심스럽지만, 이제 제도교육 밖에 있는 학생들이 좀더 자신감을 갖고 공부할 수 있게 되었네요.
Commented by 리어 at 2007/08/18 21:41
좋은 방향으로 이루어지길 바랍니다만...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왜곡되지 않을까 걱정부터 앞서는건 제가 너무 비관적이라서 그런걸지도요. 오늘도 네이버 메인을 보니 초등학교에서 공부하라고 축구골대까지 없애는거 보면...
Commented by reve at 2007/08/18 23:17
다름이 틀린 것이 아닌 차이로 인정 받고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개성이 좀 더 다양하게 드러날 수 교육제도가 잘 정착되었으면 좋겠어요. 좋은 의도로 시작했다하더라도 지금 특목고 광풍처럼 모든 좋은 제도가 시간이 지나면 이상하게 변하거나 악용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 안타까워서요.
Commented at 2007/08/19 02:5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7/08/22 12:2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보클레어 at 2007/08/23 11:49
Elliott / 2005년 3월에 개정된 초중등교육법에 이미 '대안학교' 조항이 신설되었습니다. 이미 장기적인 로드맵을 그 쪽으로 잡고 있었던 듯 해요. 어떻게 보면 교육부가 갑자기 래디컬해진 것이 아니라 원체 그렇게 생겨먹은 것일지도요;; 제 생각도 큰 방향은 옳다고 생각합니다만, 분명 여기서 생기는 부작용도 최소화시키면서 나가야겠죠. 특히 대안학교 관련 법규가 성문화된 후에 애매한 학교들까지 대안학교로 인가받는 현실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리어 / 5.31 교육개혁안도 정말 많이 왜곡되었죠.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이해찬 세대들이죠. 이번 미래교육비전과 전략도 어떤 정권에서 어떤 집행 리더가 안을 구체화시키느냐에 따라 많이 달라질텐데, 제발 이번만큼은 신중하게 접근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reve / 맞는 말씀입니다. 사실 획일성이라는 20세기의 옷은 현재의 학교와 아이들에게 맞지 앉죠. 혹자는 이것을 평준화의 문제다, 또 특목고가 문제다라고 말하지만, 저는 그것보다 국가 검인정 교과서 제도와 국가 교육과정 제도가 본질적인 문제라고 봅니다. 교육내용의 다양화에는 함구하면서 학교 형태만 바꾸겠다고 하는 것은, 경쟁 상황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어떤 얄팍한 계급적 의도가 숨어있는 것 같아서요.

비공개1 / 그렇군요. 그런데 페이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나오는데요?ㅠ 어쨌든 시간되실 때 아무 때나 연락주세요^^

비공개2 / 변화도 필요하죠. 다만 여기저기서 정보를 많이 알아보시고 신중하게 결정하시길. 제가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돕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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