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9월 06일
See You Offline
#1. 복수는 너의 것
고교 2학년 때의 동대문구장이 떠오른다. 그 날은 대통령배 전국 고교 야구 대회의 결승 진출 티켓을 놓고 인천고와 광주일고가 맞붙는 날이었다. 학교 풍물부였던 나는 응원부 친구들과 함께 경기장 뒤쪽 스탠드에 자리잡았다. 그리고 이내 훌리건들의 카니발이 시작되었다. 남고생들의 테스토스테론이 함께 폭발시키는 에너지는, 북채로 소가죽을 빵빵 두들기는 것이나 플라스틱 나팔을 불어대는 것만으로 해소될 성질이 아니었다. 훌리건들에게는 제물이 필요했다. 그 날 우리의 먹잇감은 광주일고 좌익수, 잊을 수 없는 그 이름 4번 타자 김홍일이었다. '홍일아 똥꼬가 바지먹는다' '야 니 여자친구 죽이더라' 따위의 저질 도발들이 필드 안쪽으로 쉴새없이 떨어졌다. 어디선가 '저 새끼 텔레토비 닮았다!'는 말이 들리자 누구랄 것도 없이 와하하 웃다가, 일제히 텔레토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보라돌이~뚜비~나나~뽀오" 그 굵은 목소리들이 합창하는 꼴에 정신 사나웠는지, 김홍일은 단순한 플라이볼을 놓치는 어이없는 실책을 범하고 말았다. 우리들은 배꼽잡고 웃으며 김홍일을 손가락질 했고, 그는 스탠드쪽을 한 번 보더니 고개 숙이고 벤치로 뛰어 들어갔다.
9회말 광주일고의 공격. 스코어는 3 : 2로 인천고가 앞서 있었다. 大인천고의 대통령배 결승 진출이 목전에 보이는 상황이었다. 인천고 훌리건들은 벌써 승리에 취해 교복 셔츠를 벗어 머리 위로 돌리며 방방 뛰고 있었다. 그 때 김홍일이 타석에 들어섰다. 김홍일은 신발로 타석을 슥슥 정리하더니 방망이를 들어 우리 쪽을 가리켰다. 9회말 투아웃에 주자 1루, 1점 뒤진 상황. 이 드라마틱한 설정에 저 재수없도록 만화같은 액션이라니. 물론 우리는 단체로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화답해주었다. 방망이를 짧게 잡은 김홍일의 계속되는 파울 속에 풀카운트가 이어졌고, 우리는 진심으로 경기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꺙, 알루미늄 배트의 경쾌한 소리가 들렸다. 초여름의 알맞게 촉촉한 하늘에 하얗고 작은 물체가 사선을 그리며 솟아 올랐다. 그것은 펜스를 넘겨 마치 사이언스 배쓸의 EMP 쇼크웨이브와 같이 우리 쪽으로 쿵 떨어졌고, 우리는 몇 초 간 정적 속에서 무장해제되어 있었다. 9회말 투아웃 투쓰리 풀카운트의 끝내기 역전 홈런. 포카하다가 로얄 스트레이트 플러시가 연속 세 번 정도 나오면 이 사건의 확률과 같을까. 그걸 눈 앞에서 겪은 인천고 훌리건들은 망연자실한 채로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김홍일은 우리를 바라보며 2루 베이스를 밟았다. 그리고는 우리 쪽 스탠드를 향해 엄지 손가락을 내렸다. 재수없지만 인정할 수밖에. 김홍일 녀석의 Sweet Revenge는 심지어 우리들에게도 짜릿한 그 무언가가 있었다.
왕도비정도군과의 다섯번째 만남에 대한 후기는 이것으로 대신한다. 내 성큰밭을 뚫고 들어오는 왕도비정도군의 마린-메딕 부대들을 보며 문득 그 날 하늘로 비상하던 김홍일의 야구공이 떠올랐다. 세상에 태어나서 6대 1로 이기다가 6대 7로 패배한 말도 안되는 역전패도 처음이지만, 이런 식으로 복수를 예고받고 나서 당하기도 또 처음이다. 지난 달 나에게 캐발린 뒤 야간 정액제를 끊고 20일동안 PC방에서 살았다는 왕도비정도군의 집념 앞에 나는 확실히 무릎을 꿇었다. 그건 차라리 지더라도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러니 내가 아끼는 왕도비정도군은, 내가 이 일로 뭐 삐치거나 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왕도비정도군은 만나면 만날수록 마음에 드는 좋은 동생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라. 다만 내 여자친구한테 하는 '보클레어형이 여친님보다 제가 더 좋대요' 이딴 헛소리는 이제 제발 그만두자.
#2. 헌책방과 설장구
- 어렸을 때부터 내가 책에 집착했던 이유는 바로 형이 없었기 때문이다. 형이 있는 애들은 무언가 달랐다. 그들은 내게 없는 것들, 이를테면 아이큐점프, 매직아이, 필기된 동아전과, 쇠팽이, 개조한 베레타 BB탄 총과 검은 비디오테잎같은 것이 있었다. 녀석들은 나보다 항상 뭔가 아는 게 많았고 결정적으로 그걸 뻐기고 다녔다. 그 사나운 꼴을 보던 어린 나는 내게도 형이 있어서 미지의 세계를 손쉽게 보여주기를 바랐지만, 부모님께 동생을 낳아 달라고 할 수는 있어도 형을 낳아 달라고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갖지 못한 형으로부터의 '고급정보'를 갈구하며 동인천 배다리의 헌책방에 자주 갔다. 헌책방의 눅눅한 공기는 마치 고대의 박물관처럼 시간을 정지시키는 힘이 있다. 나는 빛이 산란하는 오후에 헌책방 구석에 앉아 한참동안 '시튼 동물기'나 '우리 몸은 왜'를 봤다. 침을 발라 넘겨 때가 묻거나 모서리가 말려 올라간 책들에는 간혹 누군가의 이름이나 흔적이 남아있었고, 그건 마치 형이 보다가 나에게 준 것과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 1학년 때부터 시작한 풍물부는 내 고교 생활의 절반이었다. 동료들과 북과 장구를 들쳐 메고 너른 잔디밭으로 나아가던 것만으로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 1학년 때는 '북은 오히려 콘닥타-요'하고 김영랑을 인용하며 호기부리고 다니던 고수(鼓手)였지만, 2학년 때 전학을 가서는 그 학교 풍물부에서 장구로 전공을 바꿨다. 이후로 나는 장구와의 지독한 열애에 빠졌다. 아예 개인 장구를 하나 사서 심지어는 집에서 방문 닫아 놓고 장구를 치는 난리굿을 벌이기도 했다. 장구에 대한 사랑은 앉은반 설장구에서 꽃을 피우고 선반 설장구에서 완성을 보았다. 장구를 치던 고교시절의 나는 마치 화선지에 떨어진 한 방울 먹물처럼, 나를 제외한 배경은 모두 사라지고 오롯이 홀로 리듬 속으로 스며들곤 했다. 그건 분명한 음악적 오르가즘이었다. 그 때부터 누가 넌 무슨 악기를 다룰 줄 아느냐고 물으면 당당히 '장구요'라고 대답을 하고 다녔다. 피아노나 첼로를 기대했던 사람들의 표정에는 감추거나 드러내거나 비웃음의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언젠가 나의 이런 대답에 '맞장구' 쳐줄 수 있는 사람을 내 주변에서 만나기를 바랬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 Elliott님과 narsha님을 만났다. 간단히 두 사람의 공통점은 키가 크다는 것, 신촌 일대를 주무대로 산다는 것, 술자리에서의 유쾌한 대화가 뭔지 아는 사람들이라는 것 정도가 있다. 그리고 내게 있어서 그들의 공통점은, 어린 시절 헌책방과 설장구가 내 맘에 만들어 놓은 몇 개의 동그란 구멍에 쏙 들어맞는 레고 조각같은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Elliott님은 어린 시절 헌책방의 나무 책장 아래서 들추던 책에 그어진 정성스런 밑줄, 혹은 형이 읽다가 물려준 헤르만 헷세 소설같은 사람이다. 나는 술자리에서 내내 Elliott님을 '최형'이라고 불렀고, 최형은 학문을 열망하는 복학생에게 꼭 필요한 말들을 형처럼 다정하고 자세하게 일러주었다. 풍물부 회장을 지내면서 설장구도 쳤던 narsha님은 늦가을의 황금잔디 위에서 치는 장구의 열채 소리같은 처자다. 날래고 화려하게 휘몰아치면서도 북채가 짚는 리듬과 정확히 조화를 이루어 자신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장구와 맞장구의 미학을 아는 narsha님은 내가 찾던 그 사람 맞다. 이들과의 오프 모임은 정말 즐거웠다. 블로그가 아니었다면 만날 수 없었을 소중한 인연들이다. 나는 한 번 물면 잘 놓지 않는 맹수의 습성이 있으니 내 삶에 본격적으로 들어와 놓고선 도망갈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정확하게는 어린 시절 꽉 물려 잘 빠지지 않던 레고 조각이 주던 절망감을 상상하시면 된다.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아직 만나보지 못한 이웃분들이 얼마나 멋진 분들일지 상상하면 막 설레고 욕심이 난다. 다들 내 삶으로 끌어들여 꽉 물고 놓지 않고 싶다. 그러니까 See you offline. 블로그가 사라진다고 해도 좋은 이웃분들과 연락하고 지내고 싶다. 이건 정말이다.
그럼 저는 이만 수업 들으러 총총.
고교 2학년 때의 동대문구장이 떠오른다. 그 날은 대통령배 전국 고교 야구 대회의 결승 진출 티켓을 놓고 인천고와 광주일고가 맞붙는 날이었다. 학교 풍물부였던 나는 응원부 친구들과 함께 경기장 뒤쪽 스탠드에 자리잡았다. 그리고 이내 훌리건들의 카니발이 시작되었다. 남고생들의 테스토스테론이 함께 폭발시키는 에너지는, 북채로 소가죽을 빵빵 두들기는 것이나 플라스틱 나팔을 불어대는 것만으로 해소될 성질이 아니었다. 훌리건들에게는 제물이 필요했다. 그 날 우리의 먹잇감은 광주일고 좌익수, 잊을 수 없는 그 이름 4번 타자 김홍일이었다. '홍일아 똥꼬가 바지먹는다' '야 니 여자친구 죽이더라' 따위의 저질 도발들이 필드 안쪽으로 쉴새없이 떨어졌다. 어디선가 '저 새끼 텔레토비 닮았다!'는 말이 들리자 누구랄 것도 없이 와하하 웃다가, 일제히 텔레토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보라돌이~뚜비~나나~뽀오" 그 굵은 목소리들이 합창하는 꼴에 정신 사나웠는지, 김홍일은 단순한 플라이볼을 놓치는 어이없는 실책을 범하고 말았다. 우리들은 배꼽잡고 웃으며 김홍일을 손가락질 했고, 그는 스탠드쪽을 한 번 보더니 고개 숙이고 벤치로 뛰어 들어갔다.
9회말 광주일고의 공격. 스코어는 3 : 2로 인천고가 앞서 있었다. 大인천고의 대통령배 결승 진출이 목전에 보이는 상황이었다. 인천고 훌리건들은 벌써 승리에 취해 교복 셔츠를 벗어 머리 위로 돌리며 방방 뛰고 있었다. 그 때 김홍일이 타석에 들어섰다. 김홍일은 신발로 타석을 슥슥 정리하더니 방망이를 들어 우리 쪽을 가리켰다. 9회말 투아웃에 주자 1루, 1점 뒤진 상황. 이 드라마틱한 설정에 저 재수없도록 만화같은 액션이라니. 물론 우리는 단체로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화답해주었다. 방망이를 짧게 잡은 김홍일의 계속되는 파울 속에 풀카운트가 이어졌고, 우리는 진심으로 경기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꺙, 알루미늄 배트의 경쾌한 소리가 들렸다. 초여름의 알맞게 촉촉한 하늘에 하얗고 작은 물체가 사선을 그리며 솟아 올랐다. 그것은 펜스를 넘겨 마치 사이언스 배쓸의 EMP 쇼크웨이브와 같이 우리 쪽으로 쿵 떨어졌고, 우리는 몇 초 간 정적 속에서 무장해제되어 있었다. 9회말 투아웃 투쓰리 풀카운트의 끝내기 역전 홈런. 포카하다가 로얄 스트레이트 플러시가 연속 세 번 정도 나오면 이 사건의 확률과 같을까. 그걸 눈 앞에서 겪은 인천고 훌리건들은 망연자실한 채로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김홍일은 우리를 바라보며 2루 베이스를 밟았다. 그리고는 우리 쪽 스탠드를 향해 엄지 손가락을 내렸다. 재수없지만 인정할 수밖에. 김홍일 녀석의 Sweet Revenge는 심지어 우리들에게도 짜릿한 그 무언가가 있었다.
왕도비정도군과의 다섯번째 만남에 대한 후기는 이것으로 대신한다. 내 성큰밭을 뚫고 들어오는 왕도비정도군의 마린-메딕 부대들을 보며 문득 그 날 하늘로 비상하던 김홍일의 야구공이 떠올랐다. 세상에 태어나서 6대 1로 이기다가 6대 7로 패배한 말도 안되는 역전패도 처음이지만, 이런 식으로 복수를 예고받고 나서 당하기도 또 처음이다. 지난 달 나에게 캐발린 뒤 야간 정액제를 끊고 20일동안 PC방에서 살았다는 왕도비정도군의 집념 앞에 나는 확실히 무릎을 꿇었다. 그건 차라리 지더라도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러니 내가 아끼는 왕도비정도군은, 내가 이 일로 뭐 삐치거나 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왕도비정도군은 만나면 만날수록 마음에 드는 좋은 동생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라. 다만 내 여자친구한테 하는 '보클레어형이 여친님보다 제가 더 좋대요' 이딴 헛소리는 이제 제발 그만두자.
#2. 헌책방과 설장구
- 어렸을 때부터 내가 책에 집착했던 이유는 바로 형이 없었기 때문이다. 형이 있는 애들은 무언가 달랐다. 그들은 내게 없는 것들, 이를테면 아이큐점프, 매직아이, 필기된 동아전과, 쇠팽이, 개조한 베레타 BB탄 총과 검은 비디오테잎같은 것이 있었다. 녀석들은 나보다 항상 뭔가 아는 게 많았고 결정적으로 그걸 뻐기고 다녔다. 그 사나운 꼴을 보던 어린 나는 내게도 형이 있어서 미지의 세계를 손쉽게 보여주기를 바랐지만, 부모님께 동생을 낳아 달라고 할 수는 있어도 형을 낳아 달라고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갖지 못한 형으로부터의 '고급정보'를 갈구하며 동인천 배다리의 헌책방에 자주 갔다. 헌책방의 눅눅한 공기는 마치 고대의 박물관처럼 시간을 정지시키는 힘이 있다. 나는 빛이 산란하는 오후에 헌책방 구석에 앉아 한참동안 '시튼 동물기'나 '우리 몸은 왜'를 봤다. 침을 발라 넘겨 때가 묻거나 모서리가 말려 올라간 책들에는 간혹 누군가의 이름이나 흔적이 남아있었고, 그건 마치 형이 보다가 나에게 준 것과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 1학년 때부터 시작한 풍물부는 내 고교 생활의 절반이었다. 동료들과 북과 장구를 들쳐 메고 너른 잔디밭으로 나아가던 것만으로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 1학년 때는 '북은 오히려 콘닥타-요'하고 김영랑을 인용하며 호기부리고 다니던 고수(鼓手)였지만, 2학년 때 전학을 가서는 그 학교 풍물부에서 장구로 전공을 바꿨다. 이후로 나는 장구와의 지독한 열애에 빠졌다. 아예 개인 장구를 하나 사서 심지어는 집에서 방문 닫아 놓고 장구를 치는 난리굿을 벌이기도 했다. 장구에 대한 사랑은 앉은반 설장구에서 꽃을 피우고 선반 설장구에서 완성을 보았다. 장구를 치던 고교시절의 나는 마치 화선지에 떨어진 한 방울 먹물처럼, 나를 제외한 배경은 모두 사라지고 오롯이 홀로 리듬 속으로 스며들곤 했다. 그건 분명한 음악적 오르가즘이었다. 그 때부터 누가 넌 무슨 악기를 다룰 줄 아느냐고 물으면 당당히 '장구요'라고 대답을 하고 다녔다. 피아노나 첼로를 기대했던 사람들의 표정에는 감추거나 드러내거나 비웃음의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언젠가 나의 이런 대답에 '맞장구' 쳐줄 수 있는 사람을 내 주변에서 만나기를 바랬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 Elliott님과 narsha님을 만났다. 간단히 두 사람의 공통점은 키가 크다는 것, 신촌 일대를 주무대로 산다는 것, 술자리에서의 유쾌한 대화가 뭔지 아는 사람들이라는 것 정도가 있다. 그리고 내게 있어서 그들의 공통점은, 어린 시절 헌책방과 설장구가 내 맘에 만들어 놓은 몇 개의 동그란 구멍에 쏙 들어맞는 레고 조각같은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Elliott님은 어린 시절 헌책방의 나무 책장 아래서 들추던 책에 그어진 정성스런 밑줄, 혹은 형이 읽다가 물려준 헤르만 헷세 소설같은 사람이다. 나는 술자리에서 내내 Elliott님을 '최형'이라고 불렀고, 최형은 학문을 열망하는 복학생에게 꼭 필요한 말들을 형처럼 다정하고 자세하게 일러주었다. 풍물부 회장을 지내면서 설장구도 쳤던 narsha님은 늦가을의 황금잔디 위에서 치는 장구의 열채 소리같은 처자다. 날래고 화려하게 휘몰아치면서도 북채가 짚는 리듬과 정확히 조화를 이루어 자신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장구와 맞장구의 미학을 아는 narsha님은 내가 찾던 그 사람 맞다. 이들과의 오프 모임은 정말 즐거웠다. 블로그가 아니었다면 만날 수 없었을 소중한 인연들이다. 나는 한 번 물면 잘 놓지 않는 맹수의 습성이 있으니 내 삶에 본격적으로 들어와 놓고선 도망갈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정확하게는 어린 시절 꽉 물려 잘 빠지지 않던 레고 조각이 주던 절망감을 상상하시면 된다.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아직 만나보지 못한 이웃분들이 얼마나 멋진 분들일지 상상하면 막 설레고 욕심이 난다. 다들 내 삶으로 끌어들여 꽉 물고 놓지 않고 싶다. 그러니까 See you offline. 블로그가 사라진다고 해도 좋은 이웃분들과 연락하고 지내고 싶다. 이건 정말이다.
그럼 저는 이만 수업 들으러 총총.
# by | 2007/09/06 10:05 | 삶-비망록 | 트랙백(1) | 덧글(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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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즐거운 오프 모임
9월의 첫 자락, 지난 주말에 엘리엇님과 보클레어님을 뵈었다. 엘리엇님과 전부터 술 한 잔 하자고 했던 것이 드디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간단간단하게 썼지만 8월에 블로거들 오프 모임이 몰아쳤다. 처음에는 별리님을 만났고, 다음에는 쎄씨즘님과 카스테라님과 마동탁님, 그리고 별리님 한 번 더 만나고 엘리엇님과 보클레어님 만나는 자리까지... 블로그에서 내가 어떠한 뚜렷한 정체성과 가치관을 가지고 활동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블로거들과 아주 오랫동......more
그나저나 저에게 오프모임은 어쩐지 별세계처럼 느껴져요.(알고보면 단순히 겁이 많아서;) 성격 조금 바꾸고 싶은데 걱정이에요.
저도 수업들으러 가야겠어요. 총총-
초등학교때 풍물부에서 장구를 쳤는데, 저야 정말 잘 못치지만 확실히 다른 악기들과 어우러지면서 막 리듬을 타기 시작할때는 황홀경에 빠져들곤 했어요. 선반 설장구까지 치실 정도면 정말 대단하시네요. 전 무슨 악기를 다룰 줄 아세요? 라고 묻는 질문에 '장구요'라고 대답하는 사람을 만나면 오히려 기분이 좋던걸요.
저도 온라인 동호회 활동을 했던지라, 확실히 온라인에서 보던 사람을 오프에서 만나는 게 즐거워요. 온라인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그 사람의 독특한 억양, 미소, 온기, 그런 것들이 다 어우러지면서 보석 하나를 찾아내는 느낌이에요. 헌 책방에서 찾아낸 오래된 고서처럼.
좋은 모임, 좋은 사람 만나셔서 부러워요. :)
아, 그나저나 보클레어님 글 읽으면서 느끼는 거지만 정말 글 맛깔나게 잘 쓰세요. 우와~
어쩜 그리 글을 잘 쓰시는지..부러워요..T.T
그 날 안 그래도 피곤해보이시던데 저랑 스타하고 나서 다른 분들 뵐 때 안 피곤하셨어요? 가는 길에 걱정이 되더라구요.ㅎㅎ 그런데 정치성보다는 평소에 사실에 기초한 합리성을 중요시하는 형이 이렇게 사실왜곡을 하시면 안되죠.3:1로 이기시다가 4:2, 나중에 5:3 쯤 되다가 6:7이 된 걸로 기억하는데요?^^ 이기고 나서 별로 놀리지도 못하고 바로 헤어져서 아쉬웠는데, 충격이셨다는 포스팅보고 아쉬움을 달래요. 그런데 스타이기고 나서 밥값을 제가 계산하다니;; 한국인은 세 번 거절한다던데 괜찮다는 제 말에 바로 지갑을 넣으시다니. 형, 다시봤어요.ㅋㅋ마지막 덧글은, 음.. 그냥 부러워서 그랬다고 여자친구분에게 전해주세욤.
그런데 두번째 오프랑 넘 비교되네요. 두번째 만난 분을 보곤 헤르만헤세와 장구를 떠올렸는데, 저는 김홍일을 떠올리셨다니;; 저도 좀 그럴듯한 사람으로 바꿔주실 의향이 없으세요? : )
후기 쓰셨다길래, 어떻게 쓰셨었나 궁금했었는데 4시간 반의 스타를 이렇게 맛깔스럽게 쓸 수도 있는 거군요. 첫번째 이야기는 왠지 픽션일 것 같다는;;
비공개1 / 제 여자친구는 그런 사람 아닙니다ㅋ
비공개2 / narsha님께 말씀 들었습니다. narsha님을 처음 본 것도 님의 블로그에서였지요. 그저께 고등학교 후배를 만나 학교에서 밥을 먹다가 그 날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후배도 그 홈런을 기억하고 있더군요. 아마 그 자리에 있었던 모든 인고생들이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가지고 갈 쇼킹했던 경험 중 하나일 겁니다ㅋ
라이 / 라이님 말씀 들으니 동생에게 미안해지는군요ㅠ 그래도 제 동생은 맹수 오빠 밑에서 강건하게 맹수로 컸죠. 맹수로 키운 덕분에 지금은 제가 신나게 물어 뜯기고 살지만; 오프모임보다 훨씬 더 내공을 필요로 한다는 '얼굴 공개'를 하셨으니 라이님의 걱정은 엄살로 듣겠습니다^^
비공개3 / 막내셨군요 :) 막내이실줄 알았어요. 그런 러블리 포스는 아무나 내는 게 아니죠. 근데 제 여동생은 막내인데도 당최 애교가 없어요. 철 없는 것만 막내고 부모님께 재롱은 제가 다 부린다니까요; 권리만 찾고 의무를 저버리는 폭군 막내ㅋ
'뭔가에 빠졌었던 사람들은 그 재료가 틀려도 맛은 똑같이 안다' 이거 정말 명언이군요. 맞는 말씀입니다. 아마도 몰입할 때 분비되는 호르몬 '도파민'이 한 가지이기 때문이겠죠(뭐냐;) 저도 군대있을 때 미디어센터에서 사진과 영상 작업 교육을 받은 적이 있지만 님처럼 빠지지는 못했었습니다. 암실 대신 포토샵, 영상실 대신 프리미어라서 그랬는지도;
저 또한 뵙고 싶습니다. 슬쩍 부르는 것이 아니라 대놓고 청해도 되겠지요? 조만간이라는 말이 기약없음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아르 / ^^ 저도 좋습니다(?)
칼릭스 / 얼랄레파가 자라면 훌리건이 되는 겁니다ㅋ 이런 남고생들의 난동까지 사랑스러워하시다니 칼릭스님 교사하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우리의 진정한 용자, 왕도비정도군은 교사 지망생입니다. PC방에서 그 정도는 버텨줘야 남학교 선생님까지 가능하겠죠ㅋ
지금 장구를 치라면 예전만큼 못칠 겁니다. 게다가 몸도 뻣뻣해져서 이전처럼 머리 돌리면서 선반 설장구하라면 못할걸요. 다만 그 느낌만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황홀경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맞는 말입니다. 그 느낌을 아시기 때문에 아마 '장구요'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반가운 것이겠죠^^
싸이월드야 뭐 오프라인을 토대로 한 관계다 보니 엄밀한 의미의 온라인 관계는 아니죠. 그것 말고는 제가 온라인 활동을 한 것이 이 블로그가 처음입니다. 처음 발을 딛은 곳에 금광맥이 흐르고 있으니 저는 행운아로군요. 칼릭스님도 보석이십니다:)
살찐혀 / 살찐혀님 반갑습니다^^ 살찐혀님의 덧글은 제게는 많이 찔리는 이야기로군요;; 제 동생이 님의 덧글을 본다면 인고의 세월에 대한 회한에 눈물조차 흘릴 것 같은데요ㅋ 오빠를 가지지 않으신 것은 천만다행으로 생각하시는 것이 더 좋을 듯 합니다; 제가 말하는 '형'의 의미를 가지는 '언니'가 두 분이나 계시니 이미 살찐혀님은 어렸을 때부터 기득권이셨겠군요ㅋ 예로부터 셋째딸은 얼굴도 안보고 데려간다잖아요. 언니들 덕분에 영특하고 여성스럽고 예뻐서 그랬겠죠. 다 이유가 있을줄로 압니다^^
비공개 / 님의 미소는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받고 있습니다 :)
금요일에는 초등학교 후배이자 고등학교 후배였던 대학 후배(이것도 뭔가 만화삘?)를 만나 오랜만에 그 이야기를 나누었죠. 너도 그 자리에 있었냐고 물으니, 어떻게 그 일을 잊겠느냐고 하더군요. 그 후배도 '김홍일'을 기억하고 있어서 놀랐습니다. 그 때 광주일고 학생들은 동대문구장이 멀어서 얼마 안 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대신 광주일고 동문인 '아저씨'들이 부둥켜 안고 울었던 것을 보았었죠^^
reve / 전통극반이셨군요^^ 연극에서 치는 장구는 아마 북편을 채없이 손으로 치는 종류일 것이라고 추측해봅니다. 여성분들이 한복 곱게 차려입으시고 장구를 치면 정신 못차리죠ㅋ 설마 하회탈, 각시탈 이런거 쓰고 장구치신건 아니죠?ㅋ 그리고 reve님이 그렇게 부럽다고 하시면 전 칭찬에 대해 소화불량이 걸린답니다. 사람은 자기가 먹을 수 있는, 먹어야 하는 만큼만 먹어야죠 :)
Azreal / Azreal님 반갑습니다. 선수 놀리는 '맛'을 아신다니 더욱 반갑습니다ㅋ 특히 '좌익수'들은 마치 서슬퍼런 군부독재 시절의 '좌익사범'마냥 혹독한 시련을 겪게 마련이죠. 차마 글에는 쓰지 못하는 정말 심한 말들도 많이 하잖아요; 저같아도 좌익수했다간 정신병에 걸릴지도 몰라요; 그래도 Azreal님은 거기에 대한 복수를 안 당하셨으니 남는 장사하셨네요ㅋ
왕도비정도 / 나를 갈구는 몇 안되는 인물 중 하나가 '글발 대조된다' 운운하시면 적응이 안됩니다. 그냥 하던대로 하세요ㅋ '사실 왜곡한다' 이런 공격적인 말들이 더욱 왕도비정도군에게는 어울립니다. 왕도비정도군의 자세한 서술이 사실에 가까운 것이 맞는 듯 하네요. 6:1은 역전당한 저의 정신적 충격이 만든 기억인 것 같군요ㅋ 다만 초반에 네 판 연속 이긴 것은 확실히 기억하니 3:1은 아닙니다(이거 뭔가 쪼잔해지기 시작하는;) 그냥 5점까지 하자고 할걸 그랬어ㅠ 그리고 누가 한국인이 세 번 거절한답니까ㅋ 한국인 중에서도 돈없는 자취생들에게는 그런 거 없습니다. 날 다시 본다기보다 왕도비정도군이 옹호하는 유물론적 시각을 다시 되새김질해보시길ㅎㅎ
다른 두 분은 간접적인 칭찬이지만 내가 대놓고 '만나면 만날 수록 마음에 든다'고 직접적으로 왕도비정도군을 칭찬해놓았죠. 그리고 지금 김홍일보다 더 멋진 사람이 어딨습니까. 그런 홈런 아무나 치는거 아닙니다.
음... 그리고 '첫번째 이야기는 픽션일 것 같다' 이 이야기는 그냥 '픽션처럼 드라마틱한 이야기다, 놀랍다'는 정도의 서술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내가 아는 왕도비정도군은 남이 자신의 인상적인 경험을 써놓은 글을 두고 '꾸며낸 이야기같다, 거짓말같다'고 말하는 예의없고 생각없는 인간은 아니니까요.